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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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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L총장님께

  • 기사입력 : 2000-03-03 00:00:00
  •   
  • 최근, 향토 경남의 대표적 私學인 K대의 총장으로 선임된 L총장님께 먼
    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소 곧은 성품과 너그러운 덕망으로 학자들
    의 본보기가 돼 왔기에 총장님의 취임은 이 지역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
    대를 모은 게 사실입니다.

    특히, 국내 각 지역에서 실시된 총장선거 때마다 갈등이 극명하게 표출됨
    으로써 신성해야 할 학원에 불신과 반목의 골이 깊게 패어 온 현실을 감안
    할 때 조용한 가운데에서 아무런 잡음없이 치러졌던 K대 총장선거는 모범
    적 대학 선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승자와 패자’란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당선자와 낙선자 모
    두 대학과 향토 발전에 힘을 모으기로 그 뜻을 함께 한 것은 참으로 신선하
    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L총장님, 주지하다시피 지금 교육계는 일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른바 ‘교실붕괴’와 ‘교권침해’현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위
    기는 어느 일방의 잘못으로 초래된 것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교육정책
    부재를 비롯해 학교·사회·가정교육 모두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
    는 등 총체적 교육의 난맥상이 빚어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를 지적한다면 학교성적 제일주의식 서열
    화 교육, 즉 입시위주의 수업방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학부모 모
    두 대학입시에 매달려 우리의 2세들이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全人敎育 운운한다
    는 것 자체가 무리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참교육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 정당성을 제
    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수의 대세론자들의 말에 묻혀버리거나 무시되기 일
    쑤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향후 2세들이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및 도덕적 인품 함양은 그야말로 口頭禪에 불과
    했던 것이지요. 이러니 어찌 교육을 통한 온당한 인물이 양성될 수가 있겠
    습니까. 오늘의 교육 위기 현상을 이대로 두고서는 우리의 꿈도 미래도 어
    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L총장님, 우리의 젊은 대학생들이야말로 멀지 않아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지도자요, 인재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캠퍼스 현실을 보면 냉철한 知
    性은 있으되 뜨거운 感性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감성이 수반되지 않는 지
    성은 날카롭기 그지 없어 자칫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
    다. 논리적 지성은 학문을 탐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는 요소임에는 분명
    하나 여기에만 치우치게 되면 지적 욕구만 추구하는 냉혈한이 될 수도 있
    을 것입니다.

    진정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성의 발현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대학 교육의 실행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하다
    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젊은 대학생들을 진정한 ‘참 지성인’으로
    키워나가야 할 실로 막중한 책임과 임무가 L총장님께 짐지워져 있다고 하겠
    습니다.

    L총장님, 오늘날 발생되고 있는 크고 작은 사회비리 현상의 근본 원인은
    잘못된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하는 ‘참 교육’을 펼치지 않고 지식 제일주의식 비뚤
    어진 교육을 시행하다보니 상대의 고통은 아랑곳 없이 자신의 이익만 챙기
    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적 인간상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
    로 불행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늦었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이제야말로 고
    운 심성의 윤리적 인간성을 갖춘 많은 인물들을 배출해야만 할 때라고 굳
    게 믿으며 L총장님이 그 중심에 서서 저울추 역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
    다.

    L총장님, 대학은 캠퍼스 내에서만 홀로 존재하는 ‘독불장군’이 돼서는
    안되며 지역사회 발전과 그 맥를 함께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말해 지역
    사회와 대학은 상호 공동운명체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엄연한 사실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 새롭게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학문과 진
    리 탐구란 대학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대학과 지자체, 대학과 산업체,
    대학과 諸도민 서로간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
    고 받으면서 향토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다할 때 대학은 비로소 지역사회
    의 중심기관으로 우뚝 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L총장님은 몸담은 대학의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을 이끌어 나가는 원로라는 또 하나의 직분을 감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윤리적 혼란과 삶의 가치에 대한 극심한 顚倒현상을 겪
    고 있는 현 세태를 바로잡아 나가는데 있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L총장님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이
    만 총총 필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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