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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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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II] 맛, 그리고...(5) - 멸치회

  • 기사입력 : 2002-04-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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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이~야, 어이~야.』
    하동과 남해를 잇는 남해대교를 뒤로 한 채 자동차로 30여분간을 달리다
    보면 섬 끝단인 미조면 미조리에 닿는다. 예부터 풍부한 해산물로 어항으로
    서의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맘때면 여느 어촌마을에
    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멸치털이. 그물코에 수없이 머리가 박혀 있는 멸치를 털어내기 위해 어부
    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신 『어이~야, 어이~야』 장단을 맞추고, 그물
    에서 막 튕겨져 나온 어른 손가락 하나 반 크기의 은빛 멸치는 봄 햇살에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

    탈망작업이 이뤄질 때면 어김없이 갈매기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그물을
    벗어나 수면으로 떨어지는 멸치를 낚아채기 위해서다. 그래서 멸치털이 풍
    경을 보려면 갈매기가 떼지어 나는 곳만 찾아가면 된다.

    털이가 이뤄지는 미조리 팔랑마을 앞 바다에는 하루에 적게는 10여척, 많
    게는 30여척의 멸치잡이 배가 들어선다. 매일 정오를 전후하여 「뗏마」라
    불리는 작업선 양쪽으로 각 한척씩의 멸치잡이 배가 정박하면 이내 멸치털
    이가 시작된다. 이런 작업은 오후 4~5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한때는 100여척의 배가 몰리면서 팔랑마을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고 보면, 「미조항=멸치잡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듯도 하다.

    털이가 끝난 멸치는 멸치잡이 배에 다시 실려 바로 옆 사항마을 남해수
    협 공판장으로 옮겨진다. 선도가 높아야 제값을 받으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여기에서 위판된 멸치는 대개 젓갈용으로 팔려나간다.

    위판이 끝나갈 무렵, 위판장 한켠에는 한두 상자씩의 멸치를 펼쳐놓고 뼈
    를 발라내는 촌로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인근 식당에서 횟감 장만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할머니들이다.

    수협 옆에는 공주식당(☏867-6728) 삼현식당(867-6498) 등 멸치회를 전문
    으로 하는 두어 곳의 식당외에도, 여러 횟집에서 멸치회를 내놓는다.

    이들 식당에서는 봄기운 가득 품은 「봄멸」을 초고추장, 미나리, 양파,
    고추, 마늘, 깨소금 등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식탁에 올린다.

    상추쌈에, 아니면 깻잎에 듬뿍 싸서 먹는 멸치회는 매콤새콤한 초고추장
    과 어울려 비릿한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다. 멸치라는 놈이 워낙 연한 육질을 가진지라, 『입 안에서 녹아내린다』
    는 미식가들의 표현이 딱 맞는 것같다.

    그냥 밥과 함께 먹는 「횟밥」도 괜찮다. 대접에 쓱쓱 비벼서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흰밥과 초고추장의 맛이 기묘하게 어울린다.

    공주식당 김정선(49)씨는 『다른 생선회도 그렇지만, 멸치회는 특히 초고
    추장이 맛을 좌우한다』고 한다. 『집에서 직접 뽑아낸 「막걸리 식초」로
    초고추장을 만든다』는 그는 『초고추장 맛에 이끌려 대전 대구 부산 등지
    서도 일부러 미조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자랑이다.

    미조 사항마을에서 멸치회를 식당에서 판 것은 불과 20여년에 지나지 않
    는다. 그러나 멸치회는 식당 메뉴에 오르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 사람들의
    특별한 먹거리였던 것 같다.

    김씨가 멸치회를 처음 손님들에게 내놓은 것도 어릴 적 할아버지가 만들
    어 준 회맛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물에서 갓 털어낸 멸치를 그 억센 손으로 뼈를 발라내고는, 초고추장
    을 묻혀 손자·손녀 녀석의 입에 넣어주던 할아버지의 손맛을 잊을 수 있었
    겠는가.

    이렇듯 남해 사람, 그중에서도 미조사람들의 먹거리로 시작해 미식가들
    의 발길을 붙잡고 있는 멸치회는 3월말부터 7월까지 맛볼 수 있다. 멸치잡
    이는 이른 봄부터 11월까지 이어지긴 하지만, 횟감으로 쓰는 것은 한여름
    이전에 나오는 것만 쓴다. 특히 5~6월에 그 맛이 좋다고 한다.

    어느 때 어느 장소이든, 멸치회는 아무래도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먹는
    맛이 으뜸일 것이다. 비록 초고추장을 둘러쓰고 있지만, 햇살에 반짝거리
    는 멸치를 보는 「눈맛」도 즐겨야 할 것 아닌가.
    /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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