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기능정지된 `뇌사 국회`
- 기사입력 : 2002-05-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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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대국회 전반기 의장 및 상임위원장 임기가 지난 29일로 종료됐다. 그러
나 우리의 국회가 후반기 院구성을 하지 못하고 ‘腦死 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국회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가 없으므로
한 마디로 ‘죽은 국회’나 다름 없는 지경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됐으니
헌정 공백현상으로 인한 국정 공백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이것으로 인한 부
작용이 줄줄이 발생할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월드컵 개막식 참여 및 게임을 관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9개
국 국가원수급을 포함한 수백명의 외빈들, 이 가운데에서도 7개국의 국빈들
에 대해서는 국가원수 공식방문 절차에 의거해 관례상 국가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만나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까닭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 것인가. 그리고 개막식장의 텅빈 국회의장석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국회 개원 54주년 기념식은 말할 것도 없고 현충일 행사때에
도 입법부 수장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院 구성 실패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각종 민생법안 처
리가 무기한 연기되는 것은 물론 국가신인도와 직결된 ‘예보채 차환동의
안’ 처리도 기약할 수가 없다. 이밖에 ‘권력형비리 특검제 도입’ 문제
와 ‘공적자금 국정조사 요구안’도 표류 신세를 면치 못하는 등 크고 작
은 부작용과 피해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대회기간동안 政爭 중지를 선언한 민주·한나라당의 진심이 고작
이것이었는지를 묻고 싶다. 한국을 찾아온 수많은 외국인들이 표류하고 있
는 우리의 국회를 보고 뭐라 할 것인지 정말 부끄럽기 그지 없다. 보여서
는 안 될 치부를 그대로 노출하고서도 정치인들은 뻔뻔스럽게도 그 잘못을
상대 정당에게 뒤집어 씌우려고만 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구태을
보니 침이라도 뱉어버리고 싶다. 지난 2월, 민주·한나라당은 국회가 중립
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명분하에서 국회의장의 당적이탈과, 의장선출시 자
유투표 실시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까지 처리해 놓았지 않았던가. 그
럼에도 서로 자신의 당 의원 출신을 국회의장으로 뽑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것은 ‘국회의장의 중립화’에 서로 합의한 취지에 정면 배
치되는 모순된 행위가 아닌가. 상대 당에게 의장직을 서로 양보하는 자세
는 애시당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법정시한 내에 院
구성은 했어야 옳았다.
국회의장은 어느 당의 누가 되든 중립적인 자세를 지켜야 하며 또한 그렇
게 해 왔다. 더욱이 이제는 의장에 당선되면 당적을 갖지 못하도록하는 법
적 장치까지 합의한 만큼 입법부 수장이 출신당에 편향되게 국회를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의석수가
한 석 줄어들게 되는 불이익(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으므로)과, ‘국회
공백’까지 자초하면서 자기 당 출신을 국회의장으로 당선시키려고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민주·한나라당 지도부는 더이상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려 해서는 안된
다. 즉각 자유투표를 실시해 국회의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러저러한 구실
과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국회를 장기 표류시키려 할 때에는 그것에 대한 분
명한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될 것이다. 국회 공백 현상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
과 따가운 시선을 끝내 외면할 때에는 국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다. 즉, 그 책임 소재와 경중을 따져서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연말 대선 등
을 통해 표로써 엄중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그러므로 더이상 국민의 심기
를 불편하게 하지 말고 국회 정상화의 길을 모색해 주기 바란다.
이번 후반기 국회 院 구성 실패로 인해 우리의 국가 이미지 실추현상은
우려할 만큼 심대하다. 후진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일이 우리에게서 발
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가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실증적 예가 된다. 입으로는 政爭 중지를 부르짖으면서 행위는 그것
과 정 반대의 길로 치닫고 있는 二律背反적 한국 정치 현실을 절단할 수 있
는 ‘快刀’가 절실히 요청되는 오늘이다. 亂麻처럼 얽혀 있는 정당의 이해
관계를 싹뚝 잘라낼 수 있는 ‘진실의 칼’을 보고 싶다. 국가위신보다도
정당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정치인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은 국민들의 깨어있는 비판정신이라고 확신한다. 이러
한 국민의식이야말로 비정상적인 부패·무능정치, 鬪爭정치를 잘라낼 수 있
는 진정한 ‘快刀’요, ‘진실의 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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