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문화의 향기- 맛 그리고...] 10- 충무김밥

  • 기사입력 : 2002-05-27 00:00:00
  •   
  • 통영의 중앙시장 입구와 통영항을 끼고 있는 항남동에는 「충무김밥」집
    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간판들을 보면 「할매」 「60년」 「3대」
    「전통」 등의 문구가 끼지 않은 곳이 없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충무김밥」은 60여년 전 몇몇 할머니들이 처음 시
    작한 것을 꾸준한 명맥으로 이어온 것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한번 자리 잡은 전통은 바꾸기 힘들다. 지난 95년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된 뒤 다른 건 다 통영(統營)으로 불리지만 김밥만큼은 「통영김밥」
    이 아닌 「충무김밥」이다.

    충무김밥은 지금은 고인이 된 할머니 몇분이 부두와 배 위에서 행상으로
    팔던 간이음식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국풍 81」 행사에 참가한 한 할머
    니 덕에 전국적으로 유명세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익히 알려
    져 있다.

    부둣가에서 노년의 무료함을 바닷 바람에 실어 보내고 있는 김치문(80)씨
    는 『이전에는 노점을 하던 할머니들이 한자 조금 못미치는 대나무 꼬챙이
    에 김밥, 갑오징어(또는 주꾸미) 무침, 홍합을 한꺼번에 끼워서 팔았다』
    며 『당시 항남동 부두에서 부산, 여수, 미륵도, 사량도 등지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아 삶은 감자며 꿀빵이며, 채반에 먹을 것을 담아서 파는 할머
    니와 아주머니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출발점이 부산이건 여수건 통영항에 닿으면 점심 끼니 때가 되었
    고 뱃고동에 맞춰 배가 들어오면 김밥장수들이 날랜 걸음으로 배에 올라
    「김밥이요 김밥」을 외쳐댔다는 것이다.
    당시 별미는 다 자라면 손가락 크기 만한 주꾸미나 갑오징어 종류였는데
    김밥에 쓰이기도 했지만 술꾼들이 안주용으로 즐기기도 했다. 갑오징어나
    주꾸미가 귀해진 요즘은 오징어나 낙지를 주로 쓴다.

    여기에 넓적넓적하게 썰어서 담근 무김치가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면 옛
    날부터 지금에 이르면서 충무김밥이 이곳 일대만이 아닌 전국의 명물로 자
    리 잡게 된 이유를 알기에 충분하다.

    유난히도 햇살이 뜨거운 통영에서는 음식이 쉽게 쉬기 때문에 밥과 반찬
    을 분리했다. 충무김밥의 맛과 인기가 상(傷)함이 없이 지금껏 계속되는 까
    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충무김밥 집들이 즐비한 통영은 예술의 향이 그득한 곳이기도 하다.

    우체국의 유리문이 여닫힐 때마다 파란 하늘과 함께 갯비린내가 밀려왔다
    고 노래한 한국 현대시단의 거목 청마 유치환의 「창작의 고향」이 이곳이
    다.

    다도해가 거침없이 내려다 보이는 현재의 남망산에서는 헤수스 라파엘 소
    토를 비롯해 이스라엘의 대니 카라반, 프랑스의 장피에르 레이노 등 세계적
    인 조각가 10여명의 작품들이 현대조각의 다양한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매년 봄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의 고향인 이곳에서 국제적
    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선사한다. 윤이상 거리를 걸으며 이데올로
    기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향을 잃어야만 했던 한 세계적인 음악가의 인간적
    인 고뇌를 느껴볼 수 있다.

    충무김밥 집이 있는 항남동 뒤편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병기제작과 수리,
    작전회의를 하던 세병관이 있어 통영의 역사깊은 옷자락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나 내놓고 있는 충무김밥을 맛보러 굳이 통영까지
    가야 하는가? 그렇다. 본고장의 충무김밥을 손에 들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
    다 보면 그 짧은 수고에 걸맞지 않는「융숭한」 문화적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 야곱이 꿈을 꾸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있는
    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다. 야곱이 본 것은 하늘의 문에 이르게
    하는 「사닥다리」였다.
    「충무김밥」은 통영만이 간직하고 있는 오랜 역사와 높은 문화의 문에
    이르게 하는 「실존하는 야곱의 사닥다리」다.
    /권경훈기자 hoon519@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