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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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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風前燈火의 민주당

  • 기사입력 : 2002-10-18 00:00:00
  •   

  • 요즘 민주당은 속된 말로 ‘죽을 맛’일 게다. 우리의 정당사상 최초로
    도입된, 이른바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한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지지도
    가 하락해 도저히 그로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해질 것 같아 보이자 민주
    당을 떠나거나 결별하기 위해 보따리를 싸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철새
    들이 연상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양지를 찾아가기 위해 일정기간 몸담아온 당적을
    포기하거나 다른 당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을 철새정치인이라고 불러왔다. 이
    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념과 정치도리보다는 현실적인
    실리, 즉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심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이 당을 떠나면서 행하는 기자회견은 하나같이 그럴싸한 명분으
    로 포장돼 있지만, 한 거풀 벗기고 보면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진 대차대조
    표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정말이지 국민경선을 치르던 당시의 민주당은 활력이 넘쳐났다. 대권의
    꿈을 품고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저마다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면서 자신
    의 지지를 당부했었다. 그런데 경선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후보자 사퇴가 줄
    을 이었고 마지막에는 경선취지를 무색케 하는 극소수의 후보만 남게 됐다.

    그러나 그 모양세야 어떠했든 다수의 지지를 득해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
    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를 중심으로하여 차기정권 창출을 위해 단합하는
    것이 원칙이요, 순리일 터인데 그렇지가 못했다. 노 후보는 끊임 없이 재경
    선론과 후보단일화론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국민지지율이 높은 특정인
    을 끌어들여 대선 후보를 교체하려는 움직임마저 일어남으로써 민주당은 일
    대 회오리에 휩싸이게 됐던 것이다.

    그저께, ‘민주당내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공동의장을 맡고 있
    는 김원길·최명헌 의원이 정몽준 의원을 만나 ‘후단협’과 ‘국민통합
    21’, 자민련, 이한동 전 총리, ‘미래연합’ 박근혜 대표 등이 함께 참여
    하는 5자연대 공동신당 창당을 제안했으며 정의원이 이에 동의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것은 정몽준 의원을 대선후보로하여 정권창출을 도모
    하겠다는 것으로서, 이와 관련해 이한동 전 총리와 박근혜 대표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지만 관계 당사자간 조율이 어느정도 돼 가는 것 같아, 향
    후 대선가도의 ‘태풍’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신낙균 전 문광
    부 장관, 김민석 전 의원의 탈당에 이어 민주당 내 후단협 소속 의원 14인
    이 다음주 중 탈당키로 결의하는 등 ‘탈당 도미노 현상’이 빚어질 것으
    로 보인다.

    이들은 우선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그 첫째 목표임을 밝히고 있다. 즉, 공
    동신당 창당의 핵심역할을 하겠다는 뜻일 게다. 친노(親盧)·반노(反盧)간
    의 대결이 봉합은 커녕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 같
    다.

    아무리 정치판이 이전투구(泥田鬪狗)밭이요, 도리 따위는 아예 땅속에 묻
    어버리는 몰염치한 난장판이라고는 하지만, 어제의 동지를 눈썹하나 까닥하
    지 않고 배신하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윤리와 의리를 헌 짚신짝 내던
    지듯 마구 내팽개쳐도 좋은 것인가. 집권만 가능하다면 그 어떤 수단과 방
    법을 강구하더라도 모두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

    원칙은 실종되고 말뒤집기와 상황논리만이 판을 치는 ‘배반의 정치’는
    이제 진절머리 난다. 모두가 떠나가 버린 텅빈 들녘일지라도 홀로 도덕과
    원칙의 푯말을 세우는 정치인, 선명한 이념의 깃발을 들고 사나운 바람과
    싸울 수 있는 참 정치인 출현을 국민들은 진정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당의 존립목적이 정권창출에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국민지지도
    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선후보를 버리고 뛰쳐나와 새
    로운 당을 만들어 새 후보를 옹립하려는 것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
    든 할 수 있다는 권력지향의 극단적 기회주의 행태란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참여연대가 최근 민주·자민련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의원
    들에게 ‘철새 정치인’을 상징하는 목각 기러기를 전달하려한 것은 시사하
    는 바가 크다.

    추위가 시작되면 겨울철새가 우리나라로 이동해 온다. 철새도래지 주남저
    수지 하늘에는 새들의 날재짓 소리로 귀가 멍멍해 질 것이다. 비상하는 철
    새들이 떨군 깃털이 수북하게 쌓일 즈음에는 이 나라 새 지도자를 뽑는 대
    선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 때에는 ‘새천년민주당’이란 영구불
    변의 의미를 담은 당명을 내걸고 영원한 동지임을 맹세한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당기아래 남아 있게 될지 궁금하다. /목진숙(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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