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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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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그리고...] 밀양 재약산 흑염소 불고기 (22)

  • 기사입력 : 2002-10-18 00:00:00
  •   
  •  느긋하게 출발해서 가을 산도 구경하고 고기맛도 보려던 계획이 어긋났
    다.

     염소란 놈들이 뭐가 그리 바쁜 지, 아침에 잠시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다
    시 약속이나 한 듯 가파른 산 위로 달아나버린다니 말이다. 염소들의 「일
    정」에 정확히 맞춰 제 시간에 가지 않으면 꽁지 구경도 힘들다니, 이쯤되
    면 염소 주인도 말만 주인이다.

     아침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밀양 재약산으로 향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
    던 표충사 입구의 「약산가든」(352-7786) 주인 장진현(47)씨와 함께 그가
    방목한다는 염소를 보러 갔다.

     장씨는 자신이 키우는 염소라도 정확한 마릿수를 모른다며 『한 마리도
    못볼 수 있다』고 미리 겁을 주었지만, 「집합 장소」에는 100여마리의 흑
    염소들이 내려와서 까맣게 노닐고 있다. 겁 많고 성격 급한 염소들이라 해
    도 주인은 알아보는 지 그다지 경계하는 기색은 없다.

     장씨는 곡식으로 만든 사료를 한 포대만 퍼준다. 일부러 풀어 키우는 염
    소를 사료로 먹여 살릴 리는 만무하나 하루에 한번이라도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려면 맛나는 「간식」을 선물할 필요가 있단다.

     산 염소를 먼저 보고 염소 고기를 맛본다는 수순에 다소 문제가 있지 않
    을까 걱정했는데, 가게로 들어서기도 전에 솔솔 풍겨나오는 냄새가 잊고 있
    던 허기를 한껏 돋운다.

     만 1년 된 염소를 쓰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흑염소 불고기. 염소 특유의
    노린내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없애서 더 이상 나지 않고 그와는 다른, 진하
    고 깊은 고기 맛이 난다. 고기를 특별히 즐기는 사람이라면 쇠고기나 기타
    육류와의 차이를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소금만 쳐서 굽는 생고기와 달리 흑염소 불고기는 양념 맛도 무시 못한
    다. 손으로 일일이 포를 뜬 염소고기를 간장, 설탕, 마늘, 참기름 등 불고
    기 양념으로 잰 뒤 석쇠에 구워 낸다. 석쇠에 굽는 까닭은 충분히 연기를
    내서 남아있는 노린내를 날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격은 2인분에 2만5천원정도로, 서민들의 뻔한 사정으로 양껏 주문하기
    에는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뼈(뿔)를 푹 고아 국물을 마시면 임
    산부의 산후조리에 좋고(동의보감), 고기는 굽건 삶건 기력를 보하는 데는
    최고의 약(본초강목)임이 널리 알려진 까닭에 흑염소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
    도는 폭넓은 편이다.

     이 곳 밀양 재약산이 야생 흑염소의 집중 서식지였다는 기록은 달리 찾아
    보기 힘들지만, 제법 규모있는 방목지였던 것은 분명하다. 1990년대 말까지
    만 해도 사자평 일대를 중심으로 방목을 겸한 흑염소 전문점이 성행했다.
    정확하진 않으나 40여년전 일반 식당을 하며 염소를 키워 불고기를 냈던
    한 집이 그 독특한 맛으로 유명해지면서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하나 둘 들
    어선 것이 말하자면 유래라고 한다.

     그러나 방목지이자 흑염소 불고기의 「태생지」였던 마을이 지난 1998년
    사자평 일대의 정리와 함께 철거됨에 따라 이제는 순수 방목으로 운영되던
    「옛날식」 음식점도 거의 없어졌다.

     비록 마릿수는 줄어들었다 하나 재약산(載藥山)이 흑염소를 방목하기에
    적절한 환경임은 분명해 보인다. 산 이름이 지닌 뜻처럼 약초까지는 아니더
    라도 수백여종의 풀이 자라 흑염소들에게 적합한 먹이 환경을 이루며, 또
    한 적당히 부드러운 능선 뒤에 이어지는 가파른 암벽이 흑염소가 생존하기
    에 좋은 조건이 된다는 게 20여년간 흑염소를 방목해온 장씨의 설명이다.

     한끼 식사를 든든히 끝낸 뒤 올라선 등산길 초입. 아래 보이는 표충사와
    건너 보이는 사자·천황봉의 고고한 자태가 몸에 좋다는 염소 고기를 찾아
    허위허위 이 곳을 찾아온 내 모습과 다소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
    러나 설 든 단풍과 가을 하늘도 만끽하고, 모처럼 「무리」해서 귀한 음식
    도 먹을 수 있다는 소시민적 행복이 더 가치롭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겠는
    가.
    글= 신귀영기자 beauty@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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