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5일 (수)
전체메뉴

[금요칼럼] 빈 라덴의 목소리

  • 기사입력 : 2002-11-15 00:00:00
  •   

  • 이라크가 유엔의 무장해제 요구 결의안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는 내용
    의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의 출격 명령을 기
    다리던 전폭기들이 대기상태에 돌입한 가운데, 지난 12일 카타르 알 자지
    라 TV를 통해 방송된 9.11테러 배후인물 오사마 빈 라덴의 육성 녹화 테이
    프 성명에 대해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독일 정보기관,
    일본음향연구소 등이 성문을 분석한 결과 목소리의 실체가 빈 라덴이라고
    단정했다는 것이다.

    이 테이프를 통해 그는 지난달 12일과 23일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발리 폭
    탄 테러, 모스크바 문화궁전의 체첸 반군 인질극, 쿠웨이트에서의 미국 해
    병 피격 등 일련의 테러를 찬양하면서 “테러로부터 안전하려면 (이라크에
    대한) 공격행위를 중단하라”고 미국 및 동맹국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
    고 그는 “평화와 안전, 행복은 당신들(서방세계)만을 위한 것인가”하고
    반문하면서 “이제는 공평해져야 한다. 당신들이 우리를 죽임으로 우리도
    당신들을 죽일 것이며, 당신들이 공격하므로 우리도 당신들을 공격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독
    일 호주를 거명하면서 주의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빈 라덴을 비롯한 알 카에다 조직 섬멸을 외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단행했다. 그 결과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 수립을 이끌어 냈지만 그토록 찾던 빈 라덴의 행방
    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심지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전사자나 일
    반인들의 시신 지문까지 채취해 감식하는 등 별별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그
    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이 그토록 빈 라덴의 생사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가 9.11테러를 명령
    한 배후 인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 라덴이 살아있는 한
    테러와의 전쟁은 절반의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 무고한 아프가
    니스탄 국민들의 희생이 컸다. 이점에 대해 미국은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말
    한다. 그렇찮아도 미국 국민들은 지금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또 어떤 테러
    가 자국내에서 발생할지 몰라 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러한 차에 빈 라덴의 경고성 육성이 전파를 타고 세계 각국에 전달됐
    다. 모르긴 해도 그들의 공포심은 더욱 심해져 심장이 얼어붙을 지경일 것
    이다. 빈 라덴 목소리를 접한 부시를 비롯한 미국 행정부 요원들은 닭쫓던
    개처럼 허탈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지붕으로 올라간 닭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어느새 용케도 빠져나간 뒤 꼭꼭 숨어서 개
    를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닭, 언제까지 이러한 숨바꼭질이 계
    속될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9.11테러 피해자인 미국에게는 빈 라덴이야말로 반드시 제거돼야 할 불구
    대천지수(不俱戴天之怨)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담보
    로 한 그의 무자비한 테러행위야말로 세계인들의 공분(公憤)을 사기에 충분
    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가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한
    다. 그것은 “부시가 이라크에서 우리의 아들들을 죽이고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미군기를 이용해 팔레스타인의 노인과 여성, 어린이들이 사는
    집을 폭격하는데 대한 대응”이라고 밝힌 빈 라덴의 이번 테이프 육성 성명
    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적어도 그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을 비롯한 회교권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는 아랍 민족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하여 빈 라덴의 테러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또한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 분명한 것은 피가 또다른 피를 부르는 보복의 악순환만은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무력만이 테러를 응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란 힘의 논리로만 일관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해결점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동시에 미국의 자국 이익을 바탕으로 한 일방주의와 패권주의가 다른 나
    라에게 어떤 상처와 피해를 주고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반성도 있어야 한
    다. 회교권과 미국(이스라엘 포함)간의 전쟁은 십자군 전쟁의 역사적 되풀
    이도 아니요, 기독교 문명과 회교 문명의 충돌로 단순화시킬 문제도 아니
    다. 서로의 생존권을 인정해 주고 자신의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하면서 상
    호 공존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모색하는 길, 이것이 빈 라덴의 육성 메시
    지에 담긴 진정한 바람이 아닐까 싶다. /목진숙 논설위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