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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3부 흔적...] (12)영화 흑수선 촬영지 거제

  • 기사입력 : 2003-04-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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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의 향기3부 흔적...]
    (12)영화 흑수선 촬영지 거제

     「흑수선」(2001)은 80년대 한국 영화의 정점에 서 있었던 감독 배창호
    가 「정(情)」 등 수편의 작품으로 흥행에 실패한 후 3년만에 다시 세상에
    내놓은 영화다.

     소설 「최후의 증인」(김성종作)이 원작인 이 영화는 한국 전쟁이 끝날
    무렵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났던 이른 바 「친공(親共)포로 폭동사건」
    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영화의 대강을 정한 후 장소를 「헌팅」하는 일반적인 과정
    과는 달리, 감독이 신현읍 고현리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의 전쟁기념관을 둘
    러본 후 원작 소설의 영화화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영감을 안겼던 유적공원의 세트장은 지금 「흑수선」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져 거제 관광의 주요 코스로 자리잡았다.
     남로당 비밀 당원인 손지혜(이미연扮)와 한동주(정준호扮)를 비롯한 친
    공 포로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혼란한 틈새를 이용해서 탈출하는 신이 이 곳
    에서 촬영됐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철조망과 알파벳 P.W(Prisoner of War)
    가 큼지막하게 씌어있는 검회색 막사는 비장한 화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
    다.
     촬영이 끝난 후 관광객의 발길을 끌지 못한 영화세트는 흔히 방치되다 철
    거되곤 하지만, 유적관과 함께 관광코스로 자리잡은 이 곳은 보존상태가 좋
    다.

     세트장에서는 전쟁선전가와 군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몇몇 관광객들
    은 팔을 앞뒤로 흔들며 가사하나 틀리지 않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반공(反
    共)이 모든 것에 우선했던 시절이라면 이 곳은 그야말로 「훌륭한」 이념교
    육장이 됐을 법하다.

     유적공원을 나와 폐교인 구천초등학교(분교)를 찾아나섰다.
     등장인물들의 이성이 흔들리고 갈등이 심화되는 구천분교는 포로수용소만
    큼이나 중요한 장소다. 수용소에서 탈출한 한동주 일행과 손지혜, 그리고
    손지혜를 목숨보다 사랑하는 머슴의 아들 황석(안성기扮)은 교실 마룻바닥
    아래에 숨어 지낸다.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보급투쟁」으로 끼니를 이으면서 이들이 하
    루종일 하는 일은 유사시에 탈출할 수 있는 땅굴을 파는 작업이었다.

     폐교된 구천분교는 아담하고 예쁜 옛날식 단층 건물이고, 건물에 비해 넓
    고 깨끗한 운동장을 갖추고 있다. 여느 시골의 그리운 교정을 닮은 이 곳
    은 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노란 민들레가 운동장 가득
    피어있다.

     그러나 평화로운 겉모습과 달리 건물 내부의 까맣게 그을린 교실과 산산
    조각난 유리창은 치열했을 마지막 촬영신-탈출 포로들과 군대의 전투-을 떠
    올리게 한다.


     『이것은 사실주의 영화가 아니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념대립으로 희
    생됐던 개인의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났던 사랑을 그릴
    것이다』

     배 감독은 「흑수선」에 대한 영화팬들의 기대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기우는 듯하자 미리 이같이 해명했다. 그의 말대로 부산국제영화
    제 개막작으로 첫 선을 보인 「흑수선」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담은 「배창
    호식」 러브스토리였다.

     미스터리, 스릴러, 멜로가 적절히 혼합된 장르적 특성에 「스타일리스
    트」로 일컬어지는 배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은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
    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국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러했듯 맹목
    적인 충성과 배신, 일그러진 품성을 좌익의 캐릭터로 설정함으로써 관객들
    대부분이 지니고 있을 「레드콤플렉스」도 피해나갔다.

     같은 민족간의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과 포로수용소라는 공간적
    배경은 두 주인공의 시련을 효과적으로 극대화 시키는 수단임에 분명했다.
     분명히 「흑수선」은 인간의 보편적 감성과 아름다운 사랑이 살아있는 영
    화지만 뒤늦게 거제 포로수용소 등 촬영지를 돌아보며 느낀 감흥은 영화에
    서 느낀 것과 사뭇 다르다.

     엄연히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수십년동안 감성적·개인적인 접근만을 되
    풀이하는 이유. 그 뒤에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판단을 거부한 채 깊
    은 「상흔」으로 남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있다.
    글 : 신귀영기자 beauty@knnews.co.kr
    사진 :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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