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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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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차 한잔의 여유

  • 기사입력 : 2004-05-21 00:00:00
  •   
  • 목진숙(논설주간)

      현대인들의 삶은 참으로 분주하다. 물론 직업에 따라서는 다소의 여유
    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
    분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자신들이 불러들인 자업자득(自業自得)인지
    도 모르겠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던 인간의 삶이 언제부터인
    지 자연을 파괴하고 질서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문명의 발달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편이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각종 문명의 이기(利器)를 개발
    해 왔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기계문명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느낌마저 든
    다. 과거에는 정신적인 만족에서 행복감을 느껴왔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못
    하다. 물질의 충족 없이는 행복감을 향유할 수 없을 만큼 물질을 중요시하
    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인품이 고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물
    질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현실사회에 제대로 적응해 나갈 수가 없다. 마
    치 물질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것이 오늘의 사회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행복한 것인가.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고대광실 호화주택에 살면서도 쫓기는 심정이
    며, 항시 그 무엇에 목마른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사람이
    란 물질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란 데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지 않
    을까. 삶의 목표를 물질획득에 둔 사람은 평생동안 노력해도 그 꿈을 달성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많
    은 물질을 소유한다고 해도 더 많은 물질을 갖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만 개의 물건을 소유한 사람이 단 한 개 가진 사람의 것을 탐낸다는 말
    이 있지 않은가. 물질에 대한 인간의 한없은 욕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
    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삶의 가치를 정신세계에 둘 때, 비록 물질적으로는 만족스럽
    지 못할지라도 쫓기는 자의 초조감 같은 느낌은 결코 들지 않으리라 생각된
    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심을 공간이 없는 오두막집에 살더라도 주변에 온
    갖 풀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 향기 풍기고, 문을 열면 나지막한 앞산이 반
    기며, 밤이면 풀벌레들이 찾아와 형언할 수 없는 곡조로 노래하는 곳이라
    면 무엇이 더 부러울 것이 있겠는가. 진실로 우리 현대인들이 해야 할 일
    은 온갖 욕망으로 가득찬 마음을 비워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기심으로 점
    철된 인간의 육신을 이타행(利他行)으로 말끔히 씻어내기를 부처님께서
    는 가르쳤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은 물질로써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
    려 방황하는 마음을 바르게 이끌어 주는 것이야말로 더 큰 이타행이란 점
    을 명심할 일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문화는 더욱더 빈곤해지는 `
    문화의 지체(遲滯)` 현상을 극복하는 일은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가꾸는
    것 이외에 달리 그 지름길은 없다.

      그렇다면, 욕망과 번뇌 망상을 걷어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장 먼저 마음의 여유를 갖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즉, 마음 비우기
    의 첫 걸음인 셈이다. 그래야만 매사를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할 수
    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실수하지 않을 것이
    며, 일의 성격과 해야 할 순서가 정연하게 정돈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것이 일상화되면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가 있
    지 않겠는가. 한 마디로 마음의 문을 열어 나가는 첫 관문에 들어서는 것이
    다. 이때부터 이타행의 발로가 시작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싹 틔우기 위해서는 먼저 `차 한잔의 여유`를 갖는 것
    이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싶다.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어 서라. 그리고
    주전자에 맑은 정화수를 채워 불길 위에 올려 놓고 찻물 끓는 소리를 한번
    들어 보라. 어느새 가슴에 맑은 샘물이 촉촉히 젖어 듦을 느낄 것이다. 어
    쩌면 연꽃잎에 빗방울 듣는 듯한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아니, 바람에
    댓잎 부딪치는 음향이 마음속 깊이 흘러듦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
    로 세파(世波)에 상처난 마음을 씻어주는 묘약이 아니겠는가. 찻잎에서
    우러난 은은한 향기 머금은 차 한 잔을 마시면 몸과 마음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면서 날아갈 듯한 상쾌함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가득 찰 것이다. 이
    럴진대 무슨 욕망이 파고들 틈이 있겠는가. 한 잔의 차로써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고 세상을 보면 모두가 싱거러운 새 생명의 찬가로 가득 차 있음을
    저절로 깨닫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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