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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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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알곡이 중심되는 시대

  • 기사입력 : 2004-09-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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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로(白露)를 나흘 앞둔 가을이다. 대형 태풍 ‘차바’가 한반도를 덮칠 것이라던 기상대 일기예보와는 달리 일본 열도로 비켜감으로써 안도의 숨을 내쉰 사람들은 지난 주말 구름을 헤치고 밝게 떠오른 음력 7월 보름달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올해의 풍년을 조용히 기원했으리라 생각된다. 들판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귀울이면 알곡 여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직은 짙은 색의 황금들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벼들을 바라보면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가 불러온다.

      휴일이면 선조의 묘소를 찾는 성묘객들의 차량들로 인해 고속도로와 국도 할 것 없이 온통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그래도 성묘길이 즐겁기만 한 것은 오랜만에 고향산천을 찾아 일가친척들의 정겨운 모습을 보면서 흙냄새와 풋풋한 풀꽃 향기를 호흡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때가 되면 반드시 성묘를 하는 우리 한민족만큼 조상을 숭배하는 전통을 가진 지극한 종족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뿌리의식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무덤의 풀을 베고 무너진 묘지의 축대를 쌓는 등 온 정성을 쏟고 있는 우리지만. 진정으로 조상을 추모하면서 선대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실천하거나 유업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우리들은 형식적인 조상숭배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쁜 업무 접어두고 무덤을 찾아와 풀을 베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상님들이 진정 바라는 바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맡겨진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비록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제때 벌초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나 선조들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 실천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선조의 뜻을 올바로 이어나가는 길임을 명심할 일이다. 성묘하는 그 정성만큼 선조들을 추모하면서 유지를 이어 나간다면 우리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세계 제1의 조상숭배 민족’으로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리라 믿는다.

      요즘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재래시장이나 대형 마트. 백화점 할 것 없이 매출액이 크게 줄어들고. 고급 식당가나 대중 음식점들도 점포세 내기조차 벅차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정말 이러다가는 우리 경제가 순환을 멈추는 것이 아닐까하는 염려도 된다. 부유층들도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어려워 하는 서민들의 눈치가 보여서이기도 하겠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신들의 씀씀이를 스스로 자제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런 가운데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돈을 해외에 빼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들은 여차하면 해외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불안한 한 단면을 보는 듯 해 씁쓸하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오늘날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은 일찌기 없었던 것 같다. 서민들은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가진 자들도 자신들의 금고문을 꼭꼭 걸어 잠그면서 주변만 살핀다. 이러니 어찌 경제가 제대로 순환할 수가 있겠는가. 정부는 경제의 숨통 트기에 혼신의 힘을 쏟지 않으면 안된다. 기업들의 활동의욕을 고취할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크게 개선하고. 국민들이 정상적인 소비활동을 펼칠 수 있게시리 경제 불안감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한 마디로 희망 있는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 달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장미빛 목표나 정책을 수립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위기와 난관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겨내려는 국민들의 의지와 지도자의 확고한 리더십이 있다면 반드시 극복할 수가 있다. 정말이지 지나간 시대는 쭉정이가 큰 소리친 가치 전도된 사회가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불·탈법적인 행태를 저지르고도 반성은 커녕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정경유착·부정부패·부정선거가 다반사처럼 횡행하던 시대였다. 한 마디로 쭉정이가 알곡을 밀어내고 중심세력으로 등장해 사회를 이끌어 나간 혼돈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런데 불과 수년만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이러한 부정적 행태가 정화되고 있음은 놀라운 사실이다.

      가을들판에 서면 알곡 아닌 것이 없다. 개개인들이 겪는 현실의 어려움이야 어찌 없겠는가만. 곡식들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 자신도 한 알의 알곡으로 여물어 이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중심이 돼야 겠다는 각오를 다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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