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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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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개혁은 고통이다

  • 기사입력 : 2004-09-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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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훈(사회부 차장대우)


    1973년 9월 어느날. 칠레공화국의 대통령이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궁으로 탱크를 몰고 들어오는 쿠데타군을 향해 소총을 쏘며 저항하다 숨졌다. 1970년 11월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부’는 1973년 3월 총선 승리를 통해 의회 과반수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개혁을 위한 재신임투표를 실시하려던 날 군부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아옌데는 이날 쿠데타 군에 점거되지 않은 유일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이제 박해받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자 합니다”고 마지막 연설을 하고 혼자 소총으로 탱크와 전투기에 맞서 싸우다 살해됐다. 그날 이후 1989년 군사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칠레에서는 칠레 정부에 의해 공식 확인된 것만 보더라도 실종된 사람은 1천102명. 비사법 처형되거나 고문사한 사람의 수는 2천95명으로 모두 3천197명이 군사 정권 하에서 희생되었다.


    아옌데 정권은 ‘빵과 포도주가 가득한 풍요와 정의의 나라’를 약속하고 집권하자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기업이 소유하고 있던 구리광산을 국유화하고 노조활동을 강화하는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집권 2년4개월 동안 주요 수출품인 구리 가격의 하락과 파업·사보타주로 물가가 300%나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아옌데를 지지했던 가난한 서민들은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 개혁이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가난한 개혁은 혁명보다도 더 힘들다. 개혁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난한 서민들은 견뎌내기 어렵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개혁의 시기를 인내하며 견디라는 말은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개혁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개혁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반(反)개혁세력에 동조하고 만다. 그러나 그들에게 개혁의 결과를 설명하며. 우선 이 기간만 굶으며 참으라고 요구할 수 없다. 민주 시스템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국민이 논리적으로 무장되고 그것을 실천할 수는 없다. 국민들은 당장 필요한 것을 정부가 해결해 주기를 원한다. 그것은 돈이다. IMF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국민들도 돈의 힘을 철저하게 배웠다. ‘돈이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본가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부자들이 소비를 하지 않자 정부는 벌써 그들을 다독거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미 20%의 부자가 돈을 쓰지 않으면 80%의 나머지 국민들이 생활의 고통을 겪게되어 버린 나라에서 정부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반(半)자유주의자이고 몸은 신(新)자유주의자인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곳곳에서 발생한다.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현실적 어려움이 개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더 심해지면 개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민의 고통을 냉소하는 참기 어려운 상황마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지난 16년동안 평균 7.0%의 성장을 보여왔던 우리 경제가 올해부터 2010년까지는 4.0%의 저성장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고 국민소득 1만달러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원히 2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즉 이대로 간다면 2010년까지 국민들은 IMF시기보다 더 어렵다는 지금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서민들에게. 경제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 서민들이 어려워지면 개혁도 없다. 돈의 힘에. 생활의 무게에 1년도 견디기 힘든 사람이 즐비하다. 중산층도 한 발만 헛디디면 나락이다. 그들이 민족정기보다 밥을. 그 밥을 줄 수 있는 돈을 원한다고 해서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가난한 그들의 마음이 여론이고 민심이다. 반(半)자유주의자들의 낭만적(naive) 개혁은 오른쪽. 왼쪽 모두에서 공격받기 마련이다.


    아옌데는 혼자 대통령궁에서 죽었다. 아옌데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칠레 국민들은 행복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다. 피노체트 독재 정권도 칠레 국민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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