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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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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박연복 시인

  • 기사입력 : 2004-09-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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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의미있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지난 2일 저녁. 창원시 신촌동에 소재한 ‘풀잎마을’ 교육관 3층에서 열린 박연복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아침에 본 진달래’ 출판기념회가 바로 이것이다. 이날 참석한 하객들은 박 시인의 시집 출판을 축하하면서 더 큰 행운이 그에게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개중에는 성황을 이룬 행사를 보면서 눈물을 닦는 사람들도 있었다. 첫 시집 ‘새들처럼’ 발간이후. 제작 경비를 마련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중 한 기업인의 지원을 받아 7년만에 그의 시가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이라 한다.


    박 시인은 어릴적 풀잎마을과 인연을 맺어 이곳에서 성장. 이제는 32세의 성인이 되었다. 알아듣기 힘들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을 하고. 발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워 시를 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한다. 식사·양치질·목욕·용변을 비롯해 거의 모든 일상생활이 봉사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그다. 자아 형성기에 접어들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박 시인은 여러 차례 목숨을 끊으려고 했으며. 어느 한 여성 봉사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종교에 귀의하고부터 긍정적인 삶의 자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집에는 ‘뇌병변장애1급’이란 신체적 조건을 극복한 박 시인의 맑은 영혼으로 빚은 주옥 같은 시 133편이 담겨져 있다. “세상은 온갖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썩어서 거름이 되는 것도 있고/ 썩지 않고 독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지친 육신은 약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병든 마음은 무엇으로 치유해야 할까요/ 영혼이 아름다운 그대여/ 그대 맑은 눈빛으로 병든 세상을 치유해 주세요/ 물질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을/ 투명한 영혼의 언어로 구제해 주세요/ 그대만이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 주세요”(‘영혼이 아름다운 그대에게- 박연복 시인의 두 번째 시집발간에 부쳐’) 박 시인 측에서 알음알음으로 필자에게 서문을 부탁해와 쓴 이 시가 시집 서두에 실려 있어서 필자로서는 여간 큰 기쁨이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박 시인보다 더 많은 물질을 갖고 있으며 세속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만큼 맑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박 시인의 땀과 눈물. 투명한 언어로 빚은 결정체인 그의 시 속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강한 힘이 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박 시인의고유한 재산이 아니겠는가. 박 시인만이 소유한 이것이야말로 병든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첫 시집 ‘새들처럼’에서 박 시인은 “난 자유롭고 싶다/ 새들처럼 자유의 날개를/ 맘껏 퍼덕이고 싶다/ 그러나 내 자유는 없다/ 마치 새가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가듯이 내게 그런 자유가 없다”면서 육신의 구속을 벗어난 자유를 희구했다. 여기에서 새는 곧 박 시인의 소망이요. 또다른 자아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시집 ‘아침에 본 진달래’에는 사랑의 마음이 가득 넘쳐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이렇게 웃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이렇게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이렇게 당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이렇게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이렇게 잃었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이렇게 당신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당신이 내 마음속에 있어’) 이 시에서의 당신은 박 시인이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또한 그를 지켜주는 하느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박 시인은 사랑의 감정을 이처럼 절절하게 표출했다. 기쁨과 슬픔. 꿈. 자신의 영혼까지도 두려움 없이 바칠 수 있는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치솟는 분수처럼 쏟아놓은 것이다.


    박 시인의 시집 책갈피를 넘기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을 적셨다.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찡한 감동이 가슴을 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흐릿한 정신상태로 시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럽고 초라해 보인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한정된 삶을 살면서도 자신만은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의 목표를 물질에 두었을 때 영혼은 더 없이 고달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명의 고귀함을 추구하면서 정신적 사랑에 심취한다면 영혼은 한없이 맑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진리를 박 시인의 시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곧 행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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