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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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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풀잎은 바람에 눕는다

  • 기사입력 : 2004-10-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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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훈(사회부 차장대우)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2004)이 지난 4일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지난 3월 23일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짐 리치(공화)의원 등이 제출한 법안을 의제로 채택한 이후 7월 21일 하원 통과. 9월 28일 상원 수정통과. 10월 4일 하원 재의결 등 북한인권법과 관련된 미국 정계의 움직임은 바빴다. 미국 대통령선거에 앞서 11월 초 부시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률이 정식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태평양 너머 멀리서 우리를 향해 큰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우리는 그 바람이 얼마나 거셀지 모른다. 탈북주민에 대한 예산지원 등 그 법의 구체적 내용이 가져올 결과도 중요하지만 미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의 성립과정에서 보여준 북한과 북한주민. 북한정권에 대한 인식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이어 내려오는 우리 정부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법안 제3절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회의 인식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Findings)을 25개 항에 걸쳐 나열하고 있다. 그 첫째가 북한정권은 인권을 무수히 심각하게 훼손하는 김정일 절대권력하의 독재정부라는 것이다. 2항이 북한정권이 모든 정보와 예술표현. 학술연구. 미디어 등을 조종하고 표현의 자유와 외부 방송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3항은 북한정권이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를 종교적 수준까지 숭배하도록 조직적. 정치적. 이념적으로 전 주민을 세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들은 김정일 독재정권과 그 독재정권의 핍박을 받는 북한 주민이라는 북한정권과 주민의 대립적 분리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비도덕적. 비인권적 독재정권에 대해 미국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들이대며 북한인권법을 성립시켰다. 이 법이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는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고 하는 정당간의 차이를 넘는 ‘미국적 가치’의 세계적 보편화라는 미국민들의 기준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이 법안을 통해 북한 내부의 인권문제를 국제여론에 환기시키고 탈북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정권을 고립시키고 국제사회의 압력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정책방향은 김대중 정부 이래 화해와 교류. 북한정권과 대화를 통한 북한 상황의 개선. 국제사회로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온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우리 정부의 수년에 걸친 노력과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 경제협력 등 적잖은 성과물들이 인권의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독재권력에의 지원으로 보여질 가능성마저 배제하지 못한다.


    우리는 북한의 급격한 붕괴와 전쟁 모두를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더 우려한다. 북한의 급격한 붕괴는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경제에 감당할 수 없는 큰 짐을 지우게 될 것이라는 게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의 일반적 의견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가지고 있을 지 모르는 핵과 미사일이 미국과 일본의 안보에 큰 위험이 되고 특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북한이 주는 위협에 대한 한미간의 인식의 차이가 북한정권에 대한 접근의 차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바람은 이미 불고 있다. 북한인권법이 발효되고 중국과 북한의 반발이 가시화되면 우리 정부의 노력들이 태풍 속의 초라한 바람막이가 될 우려마저 있다. 북한인권법이 미 의회에서 심의되고 있던 지난 9월 2일. 열린우리당 의원 27명은 법안 반대의견을 미 의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5일 후 한나라당 의원 33명은 찬성의견을 제출했다.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민주노동당은 북한인권법이 1988년의 이라크해방법. 2003년의 이란민주화법에 이은 이른바 ‘악의 축’ 국가에 대해 미국이 마련한 3번째 법안이라며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바람이 불면 나무는 흔들리고 풀잎은 눕게 마련이다. 우리의 운명 또는 미래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결정이 우리와는 먼 곳에서 이미 이뤄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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