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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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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과거사와 `진실'

  • 기사입력 : 2005-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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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훈 정치부 차장대우

    투자 등 주요 경기지표들이 잇따라 개선되고 설 자금용 돈이 시중에 많이 풀리는 등 경기회복의 징후가 많다고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설자금이 지난해의 2배 이상 증가했다. 통계청도 소비자 기대지수가 4개월 만에 상승. 국민들의 소비심리가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경기 상승에 대한 희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설 연휴에 만난 생활인들은 너 나 없이 지난해는 너무도 힘들었고 올해는 살기가 좀 나아져야한다고 살림살이를 걱정했다. 설을 지내면서 들은 민심의 화두는 역시 경제였다. 그 다음이 건강이고 그 다음. 화제가 궁색해지면 등장한 것이 정치였다.


    정치문제에서 이번 설의 화제는 ‘과거사 문제’가 1순위였다. 그런데 정치는 역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명백히 드러나는 화제였다. 경제. 건강 등에서 맞장구를 치던 사람들도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백히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온 국민이 축구해설가이고 정치 평론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들이 선명했다. 활동을 시작한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가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김형욱 실종사건 ▲KAL 858기 폭파사건 ▲정수장학회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 7개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반대론자들은 진실과 화해위원회.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검찰. 경찰. 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 동시다발적으로 각종 과거사위원회가 지나간 일들을 조사하는 것이 무슨 실익이 있으며. 또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다. 더 솔직히 도대체 ‘진실’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또 과거사 관련 문제들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의 문제가 많다며 정치적 의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총론적으로 경제가 어려운데 과거는 무슨 과거냐며 몰아치기로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과거사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능할까에 솔직히 의문을 표했다. 이미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보관 자료 부실’과 ‘의도적 폐기·소각’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관련자들의 면담을 통한 ‘진실’ 규명이 힘들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당으로서는 당당하지 않을 필요가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나 자신도 그에 대해 피하거나 그런 적도 없다.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과거사 문제와 정치적 목적의식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박대표는 “그동안 박 대통령 시절에 피해를 본 분들에 대해선 수없이 여러번 사과를 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적 목적의식이 없다해도 과거사 조사의 정치적 파장은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이나 진실위원회의 의도와는 달리 박 전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짙은 영남지역 주민들은 과거사 조사에 대해 감성적 반발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조사결과 새로운 사실이나 진실의 확보없이 변죽만 울릴 경우 이같은 반발감은 깊어질 것이다. 또 과거사 조사 시기의 ‘과거’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20·30대 층도 취업도 되지 않는데 과거타령만 한다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오면 과거사 조사의 정치적 위험은 여권이 감수하기 쉽지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아픈 과거를 구태여 들추어 내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사실들을 연결해 보고 싶은 것은 역시 미래를 위해 다시는 그런 일이 우리사회에 없도록 하자는 씻김굿 같은 것일 게다.


    “진실을 말하는 새 세상을 만들고 싶지. 누구도 정죄하고 싶지 않다”는 오충일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위원장의 말 그대로 ‘화해와 용서’를 위한 과거사 조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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