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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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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우리들의 봄

  • 기사입력 : 2005-02-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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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진숙 논설주간

    지난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수십년만에 몰아친 강추위는 대지를 꽁꽁 얼어붙게 했으며.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의 가슴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거리를 배회하는 청년실업자들의 낡은 외투자락을 헤치며 사정없이 불어오는 칼바람은 이들의 우울한 그림자마저 칼질하듯이 그 맹렬한 기세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수도관이 동파되고 김치독이 얼어터졌다. 눈도 유난히 많이 쏟아졌다.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한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인가로 내려오가다 차량에 치여 절명하는 사고도 생겨났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면서 추위를 당연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키를 비롯해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몰라도 서민들에게는 추위야말로 가장 두려운 대상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겨울 추위가 극심할수록 봄은 더 빨리 찾아온다고 했던가. 며칠동안 감미로운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셨다. 봄을 재촉하는 비다. 땅속에 잠들어 있는 뿌리와 씨앗들이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매화나무 가지에는 물방울 같은 꽃망울이 송송 맺히기 시작했다.

    그 중 몇몇은 햇살의 간지럼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만 활짝 잎을 피운 것도 있다. 희다못해 푸른빛이 감도는 꽃잎에서 범접할 수 없는 청상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 봄을 감지하는 꽃 가운데 매화만큼 예민한 것도 없을 게다.

    검은 나무둥치를 보면 흡사 죽은 듯이 보였는데 찬 바람에도 끄떡 없이 새 생명의 움을 틔우니 말이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한 말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주일심춘불견춘(晝日尋春不見春)/ 망혜답파롱두운(芒鞋踏破壟頭雲)/ 귀래우간매화하(歸來偶看梅花下)/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이라 한 작자 미상의 옛시가 떠오른다. “해종일 봄을 찾았으나 만날 수 없어/ 신발이 다 닳도록 걸어서 세상끝까지 왔어라/ 집으로 돌아와 매화나무를 보니/ 봄은 이미 가지끝에 와 있네”란 뜻이다. 봄은 벌써 우리의 산과 들. 정원. 가슴속에 당도해 있지만 정작 우리들 자신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계절은 이미 봄의 길목으로 접어들었지만 우리의 삶은 아직도 찬바람 부는 겨울이다. 두껍게 얼어있는 불황의 늪이 언제 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그 긴 경제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도 상승하고 내수도 조금씩 살아나며 기업의 신규투자도 늘어나는 점을 보면 경제에도 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급한 진단은 금물이라며 신중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지나친 낙관론을 펼쳐서 기대치만 한껏 고양시켰다가 그 결과가 형편없이 나타나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보다는 조심스런 전망을 함으로써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지나친 신중론 또한 최선은 아니라고 본다. 잘 될 것이란 마음 가짐으로 일을 하게 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듯이. 반드시 경제불황을 탈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온 힘을 쏟아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도 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쏟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경제회생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일 것이므로 어느 해보다도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해법들이 그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정쟁(政爭)으로 인한 정치 불안이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므로 여야 정치인들은 정쟁 중단을 국민앞에 약속하고 올해를 경제회생의 해로 삼아 전력투구해 줄 것을 주문하는 바이다. 또한 노동계도 ‘무분규 선언’을 통해 노사가 하나되는 상생(相生)의 터전을 일구어 주기 바란다.

    이렇게만 되면 비록 원화가치 상승으로 인해 국제 무역 환경이 어렵더라도 그 돌파구가 열릴 것이며. 재도약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믿는다.


    애타게 기다리는 자의 가슴에 봄은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김없이 봄은 오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처럼.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은 그 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오늘이 우수(雨水)다. 봄은 이미 온 천지에 와 있다. 우리들의 가슴속 수신함에도 봄의 정령(精靈)의 향기가 물씬 밴 편지가 당도해 있을 것이다. 개봉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저하지 말고 봄의 여신(女神)이 보낸 ‘봄 편지’를 꺼내 읽어보자.

    죽은 듯한 나뭇가지에 새 잎을 피우고. 언 땅속 새싹들의 잠을 깨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봄이다. 그래서 봄은 바로 생명이요 희망이다. 우리들의 봄을 가슴 깊이 호흡하고 불황의 그림자를 말끔히 지워나가는 지혜와 힘의 원천으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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