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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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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초보 산행기

  • 기사입력 : 2005-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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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감 "이 정도 쯤이야"

        난감 "헬기 올려주이소!"

        쾌감 "그래 이 맛에…"


       이렇게 어리석을 줄은…. 너무 얕잡아 봤다. 지리산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땀나는 행동 ‘절대 금지’. 100m 이상은 무조건 차로 이동. 타고난 게으름일까. 신체안락주의(?)를 신봉하는 기자가 처음부터 따라붙은 게 무모한 도전이었다. 지난 주말(14일) 지리산 등반 계획이 미리 잡혀있던 본사 산악동아리에 오로지 취재를 위해 사정하듯 합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몸살에 시달리며 미라처럼 전신에 붙인 파스냄새에 취해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마음만은 성취감과 개운함으로 뿌듯했다. ‘이 맛에 사람들이 산을 타는구나.’ 문득 등산 마니아가 될 것 같은 느낌이 팍 왔다.



        ★ AM 6:50 중산리 매표소
        구름이 제법 많이 낀 게 산행하기 좋은 날씨였다. 무더운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도심과는 달리 지리산은 아직 초봄. 전문 산악복장을 갖춘 일행과 달리 반팔 티셔츠에 운동화. 간식거리 조금 넣은 배낭하나 달랑 멘 어설픈 복장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안내판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가파른 산길이 시작됐다. 1시간이 채 안돼 이성계의 명을 받은 장수가 한 서생의 목을 치면서 부러진 칼이 꽂혔다는 칼바위를 지났다. 여기까진 좋았다. 이후 무조건 산비탈 경사길이었다. 뒤처지기 시작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죽을 힘을 다해 일행을 쫓아갔다. 간간이 활짝 핀 연분홍빛 진달래의 싱그러움이 산행의 피로를 잠시 달래줄 뿐이었다.

        ★AM 10:20 로타리산장 도착
        겨우 도착했다. 일행은 벌써 요기를 한 모양이다. 일부는 지루할 정도로 기다린 듯한 표정이다. 달콤한 휴식시간도 잠시.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코스라는 선배의 말에 오기가 불끈 솟았다. ‘그럼 이제까진 장난이었남.’ 이미 땀에 푹 젖은 반팔T셔츠를 확 벗어버리고 민소매차림으로 오르기로 했다. “니 나중에 어깨 다 탄다.” 충고도 애써 무시했다. 결국은 후회했다(그날 밤 벌겋게 익은 어깨 때문에 한숨도 못잤다).

        산길을 조금 오르자 법계사가 나왔다. 이런 높은 곳에 어떻게 사찰을 지었을까 마냥 신기하다. 법계사 입구로 들어서는 일행을 뒤로 하고 먼저 천왕봉으로 향했다. 경사가 급속도 가파른 바위와 계단을 한참 지났다. 이미 일행들은 벌써 추월해 조그만 산봉우리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아이가~ 저기가 천왕봉이다.” 일행을 인도해 온 K선배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중상리~천왕봉~장터목 지나 세석평전~거림

        10시간 12km 강행군… 피로 잊게하는 '자연 美'

     

        ★AM 11:30 천왕봉
        개선문을 지나고 한 30m 정도 깎아지른 절벽구간이 눈앞에 드러났다. 마지막 관문. 근데 이게 장난아니었다. 경사가 족히 50도는 넘어 보인다. 이미 허벅지와 장딴지는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양손까지 써가며 기어가다시피 한걸음 한걸음 내디딘지 한참만에 드디어 천왕봉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온통 땀범벅. 정상의 스산한 바람에 땀이 마르면서 머리카락에는 서리가 앉은 양 소금 결정이 송글송글 맺혔다.

        정상 표지석을 밟고 내려보는 절경은 광대함 그 자체였다. 모든 산이 내 발 아래 있었다. 검푸른 구상나무들은 희뿌연 구름 아래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장엄하게 펼쳐진 산들을 뒤로 하고 흑갈색으로 드러난 암부 통천문을 지나자 제석단 고사목지대에 들어섰다. 오랜 세월 풍우에 씻긴 거대 동물의 뼈처럼 하얗게 탈색된 고사목들이 황량함을 느끼게 했다. 잠시후 장터목대피소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가볍게 먹은 뒤 세석평전으로 향했다. 산을 오를 때의 고생스러움은 가신듯 내려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PM 2:30 세석평전
        능선을 몇 개 넘어 촛대봉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인 넓은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행복해~.” 옆에서 한 앳된 여대생이 세석평전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지리산의 심장부인 세석평전.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사방으로 길고 웅장하게 뻗은 계곡은 마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듯했다.

        세석평전은 황량한 초원지대로 등고선별로 식물생태 분포가 명확히 나타난다고 한다. 상층은 지보초. 좁살풀. 산새풀 등 여러 종류의 초생식물. 중간층은 철쭉이 집단 서식하는 관목지대. 하층은 구상나무와 굴참나무 등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룬다. “보통 철쭉은 5월 20일 전후로 만개하는데 올해는 5월말이나 6월초에 절정을 이룰 것 같네요.” 대피소 직원의 설명이다. 물감을 뿌린 듯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릴 철쭉들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PM 5:30 거림
        드디어 최종 하산구간. 다리가 천근 만근이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가끔씩 나타나는 가파른 길은 무릎을 굽힐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을 느끼게 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선배가 스틱을 건네줬다.
       양손에 스틱을 잡고 어기적 걷는 모습이 영락 목발을 짚고 가는 모양새였나 보다. 남의 고통은 모르고 키득키득 웃는 일행이 얄밉기만 했다. 결국 난 외치고 말았다.

        “헬기 불러주이소. 더 이상 못갑니다.” 사실 기자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다는 미안함도 들었지만 일단 살고봐야 했다.
        이미 기자의 가방은 S선배가 대신 둘러멨다. L선배는 청국장 냄새 나는 발고린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를 마사지해 주기까지 했다. 가다 멈추다를 수십번 반복. 기는 듯이 1시간을 넘게 간 후에야 겨우 최종 목적지 거림에 도달했다.

       해발 1915m의 지리산 천왕봉. 대략 10시간. 12㎞의 고된 산행. 태어나 가장 높은 산에 올랐고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산행을 한 금쪽 같은 하루. 평생 잊지못할 첫 경험이었다. 다만 그 이후 내 별명은 어느새 ‘헬기’가 돼 있었다.
    글·사진= 최승균기자 july9th@knnews.co.kr

        ▲교통편
        진주에서 중산리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진주 시외버스터미널 (055-741-6039)~ 중산리 가는 버스(1시간 10분 소요). 하루 18회 운행하고 중산리에서 진주행 막차는 오후 7시 35분이다.

        ▲천왕봉 주변 대피소
        로타리대피소(055-973-1400) 장터목대피소(016-883-1750) 세석대피소(016-346-1601). 모두 실내를 깨끗한 목제 침상으로 꾸몄으며 공단이 직접 관리한다. 이용료 1박에 7천원. 모포대여료 1장에 1천원. 각 대피소에서 간단한 과자나 음료를 판매(술이나 국물이 발생하는 컵라면 등은 제외)한다.

        ▲알고 오릅시다 -초보자 등산시 보행법
        -발목을 감싸주는 등산화는 필수. 발톱은 짧게 깎고 등산용 양말 두개를 신는게 좋다.
        -오르막길에서는 레스트 스텝이라는 전문 보행법을 사용한다. 앞다리를 올려 딛기까지 뒷다리를 곧게 펴서 걷는 방법이다. 이 보행법은 허벅지와 장단지뼈를 수직으로 놓아 버티며서 근육들을 잠시 쉬게 해준다.
        -내리막길에서는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장 많이 간다. 등산화끈을 졸라매고 무릎을 조금 굽힌채 신중하게 발을 내디뎌야 한다. 무릎을 굽힘으로써 관절에 쿠션 효과를 줄 수 있다.
        -산행에 오르면 일단 천천히 꾸준하게 걸어야 한다. 보통 50분 걷고 10분 쉬는게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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