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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이 시대의 처선(`處善')은?

  • 기사입력 : 2006-0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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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진숙 논설주간


    영화 ‘왕의 남자’가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관객수 650만명을 돌파한 것에서 보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묘한 마력을 지닌 영화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수일전 노무현 대통령 내외도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지난 주말 서울 롯데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 등 여러 정치인들도 관람했다는 것이다.


    연산군이 광대 패거러를 궁중에 불러들여 한 바탕 질탕하게 놀이판을 벌이는 ‘역사극’으로만 알려진 이 영화가 새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단순한 사극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에 오늘의 정치상황을 대입시켜 볼 수 있는 풍자극이란 점 때문일 게다.


    한나라당은 수일전 발행한 당보에 노무현 대통령을 ‘왕의 남자’의 연산군에 빗대면서 영화포스터 가운데 연산군의 얼굴을 지우고 대신 노 대통령 얼굴을. 장생·공길 대신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와 이상수 노동부장관 후보자 얼굴을 각각 넣은 ‘패러디 당보’를 배포했다. 여기에서 ‘대한민국 최악의 개각 광대극. 국민을 가지고 놀다’란 제목을 달았으며. “여당에서 배척받는 인물이라도 대통령 코드에만 맞으면 장관이 된다”면서 1.21 개각을 두고 ‘코드 인사’·‘세탁소 인사’·‘빚 갚기 인사’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재작년 7월. 박근혜 대표를 ‘성적 모독’하는 내용의 패러디물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재됐을 때 강경하게 항의해 사과를 받아낸 한나라당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노 대통령을 폭군 연산에 빗대어 패러디한 것은 아무래도 좀 심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러다 보니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여옥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생모의 죽음에 한을 품고 칼부림을 하는 연산과 친구의 근사한 가방을 면도칼로 그어버린 어린 시절 노 대통령···세상에 대해 한을 품고 있는 연산의 캐릭터는 노 대통령을 통해 지난 3년여 동안 수도 없이 확인했던 것”이라 말했다. 이쯤되면 정도를 넘어선 비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연산때나 지금이나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애국자들이 드물다는 점은 동일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은 환관 김처선(金處善)이라고 믿는다. 의술을 알았던 그는 성종때 인수대비의 병을 치료해 품계가 정2품 자헌대부에 올랐다. 연산군을 시종했던 그는 연산이 궁궐내에서 온갖 폭정과 음란행위를 하자 죽음을 각오하고 “늙은 몸이 위로 네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에 어느 정도 통하여 아는 바로는 상감마마와 같은 군주는 일찍이 없었사옵니다”라며 직간(直諫)했다. 화가 치민 연산이 그의 심장에 화살을 쏘자 피를 흘리면서도 “늙은 내시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 하겠나이까. 상감께서 오래도록 임금 노릇을 못하게 될 것 같아 한서러울 뿐입니다”며 간언(諫言)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연산이 친히 칼로써 팔다리와 혀를 잘라 그를 죽인 다음 시신을 산에 버려 짐승의 밥이 되게 했다고 한다. 연산은 동·서반의 대소인원과 군사중에 김처선(金處善)이란 이름을 쓰는 자는 모두 개명하도록 명했으며. 공식 문서에 처(處)자 사용을 금지시켰고. 처용무(處容舞)를 풍두무(豊頭舞)라고 고친 점을 볼 때 얼마나 김처선을 미워했는지 짐작된다.


    민주화된 오늘날임에도 직책을 걸고 진정으로 직언(直言)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보신(保身)에 급급한 자들이 입으로만 애국애민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연산은 신하들의 바른 말을 듣기 싫어 『口舌者禍患之門滅身之斧也』(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자신의 몸을 죽이는 도끼)란 글을 새긴 패를 차고 다니게 하여 언로(言路)를 막았다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이 나라 역사를 이어온 진정한 주인은 김처선과 같은 죽음을 불사한 민초들이 아니던가. 지금 이 나라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른 말과 옳은 행위를 하는 정치인들이 참으로 드물다. 정파적 이해관계나 개인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국민을 기만한다면 결국 그 자신도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을 왜 모르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노 대통령이든 여야 정치인이든 그 누구를 막론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던진 처선의 희생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의 허언(虛言)이 산과 강을 이루어 국민과 국인 사이를 가로막는다면 국민통합이란 구호는 한갓 헛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 시대에 부활한 새로운 처선(處善)들의 애국심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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