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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노숙자와 니트족

  • 기사입력 : 2006-0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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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천왕(천황)이 거처한다는 도쿄의 황거(皇居)는 주변 공원의 잘 가꾸어진 나무와 인공호수로 둘러 싸여 한국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그런데 이 곳 ‘바깥 뜰’에서 노숙자들이 웅크리고 자는 모습을 어렵사리 볼 수 있다. 천왕과 노숙자.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해야 할까. 선진 일본의 아이러니다.

      여기에다 일본사회엔 일에 대해 의욕을 잃은 이른바 ‘니트족’(NEET族)이 줄지 않아 고민인 모양이다. 니트족은 영국에서 처음 나온 용어로 영어의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머리글자를 딴 약어다. 직업도 없고 직업을 구할 생각도 없으며 진학도 하지 않고 직업교육도 받지 않는 15~34세 사이의 젊은층을 일컫는다. 부모에게 기생해 무위도식하는 무직자들이다. 니트족은 한창 개발 붐이 일고 있는 중국에서도 골칫거리다. 청년실업자의 약 10%를 차지한다.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라난 ‘샤오황디’(小皇帝)의 변형된 모습이다. 이들은 고교나 대학 졸업후 직장생활을 잠깐하다 적응치 못하고 중단한 뒤 부모의 부양을 받으며 다시 취업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노숙자와 니트족의 문제는 세계화에 깊이 빠져있는 한국사회인들 예외일 수가 없다. IMF 관리체제를 겪은데다 성장엔진이 삐끗거리는 터라 그 수가 만만찮을 것이란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숙인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취합한 것을 보면 서울시에서만 노숙인이 1만5천여명이나 된다. 경남에선 통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불행히도 니트족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보고서에서 밝힌 바로는 2004년 기준으로 121만4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직장을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비(非)구직 니트족이 80만명에 이른다. 증가추세는 일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최근 5년사이 우리가 87.1% 증가한 반면 일본은 18.3% 늘어나는데 그쳤다.

      무리한 비교가 될지 모르겠으나 체면만 무시한다면 거지가 상팔자다. 거지 생활을 소설에 담기위해 거지 체험에 나섰던 작가 지망생이 결국 거지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늦잠자도 성가시게 깨울리 없고 끼리끼리 잔칫집 정보도 빨라 잘도 챙겨 먹는다. 요즘엔 그런대로 구호체계가 잘 돼 있어 줄서는 것만 감수하면 하루 끼니는 해결할 수 있다. 경제타령. 정치타령 할 일 없으니 이만큼 편한 팔자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야할 사람들에겐 부담이다. 결국 우리사회가 안고 가야하고. 해결해야할 어두운 단면이다.

      오늘 서두에 니트족이니 노숙자니 장황하게 늘어 놓았지만 촛점은 이달초 이명박 서울시장의 ‘감동적 드라마’를 아무래도 그냥 넘기기엔 아까웠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서울 용산구민회관에 정확히 노숙자 1천72명이 모인 자리에서 시작됐다. 평소 쉰듯한 목소리지만 마이크를 잡은 이 시장은 자신으로 가득 찼다. “예전에 나도 바로 이곳 용산에서 환경미화원 생활을 4년이나 했다. 국가탓 사회탓 부모탓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도 자립도 할 수없다. 뉴타운 개발이 적어도 10년은 걸리는 만큼 언제든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 공짜로 밥얻어 먹을 생각말고 차라리 굶어라. 술은 돈번 다음에 마셔라.” 젊은 시절 사회 밑바닥 체험을 바탕으로한 이날 1시간 가까운 강연에 20여 차례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이들 중 600명이 1차로 서울시가 발주하는 공사현장에 투입돼 ‘거리의 사람’이 ‘일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건설업체에서 2만5천원. 서울시 복지예산에서 2만5천원이 일당으로 지급된다. 말로만의 양극화해소가 아니라 눈에 확 띄는 실천이다. 實事求是(실사구시)가 별건가. 여기에 색안경을 끼고 봤다면 안경을 벗어야 한다. 정치적 이벤트 운운한다면 그건 ‘잡소리’다. 도내 자치단체장들도 ‘벤치 마킹’했으면 한다.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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