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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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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공약(空約)' 천적 `매니페스토 운동'

  • 기사입력 : 2006-0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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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들은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입밖으로 나오는 말 가운데 믿을 것이라고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이 말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은 바로 공약(空約)을 의미한다고 할 만큼 신뢰성을 갖기 힘들다는 점을 풍자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어린이들조차 ‘정치인=거짓말쟁이’로 알고 있을까 싶다.


      유권자들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얼마나 많은 거짓말쟁이들이 나와 그럴 듯한 말로 속이는 ‘거짓말 잔치’를 벌일지 벌써부터 걱정된다고들 말한다. 출마자들은 온갖 빛깔로 채색된 홍보전단과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킬 것임에 틀림 없다. ‘백의천설(百衣千舌)’ 즉. 백가지 옷을 시시때때로 갈아입고 천개의 혀로써 유권자들을 속이려 들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공약시대를 마감할 가공한 위력을 지닌 태풍이 곧 불어닥칠 것이 감지되고 있어서 주목된다. 후보자들의 공약에 대한 실천 가능성을 따져보고 당선된 이후에는 공약대로 실천됐는지를 평가하는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말해 후보자들의 정책공약에 대해 선거전에 자세히 검증하고 당선된 뒤에는 이행 여부를 철저히 평가하자는 것으로서. 정당 또는 후보자들이 선거공약을 내놓을 때 목표·우선순위·기간·공정·예산 등 제반 사항을 수치로 기록해 유권자들이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검증과 평가를 용이하게 하자는 정책선거 유도 캠페인을 말한다.


      이 운동은 1834년에 영국에서 생겨났다. 그 당시 보수당 당수였던 로버트 필은 “겉만 화려한 공약은 한순간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 수 있을지라도 결국 필패한다”면서 구체성과 실천 가능성 있는 공약의 필요성을 역설한 데에서 비롯됐다. 이 운동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은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였다. 그는 1997년에 ‘25세 미만 청년 25만명을 고용’하고. ‘아동(5~7세)학급규모 30인 이하로 축소’하며. ‘향후 2년동안 현재의 지출제한 틀을 유지’하겠다는 등 세밀한 내용의 공약을 제시했다고 한다.

      1억8000만 파운드가 쇼요되는 엘리트교육제도를 단계적으로 없앰으로써 학급규모를 줄이는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며. 정해진 액수 이상의 이익을 창출한 기업들에게 추가로 세금을 부과해 이것으로 25만명의 청년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한 것이다. 토니 블레어의 ‘매니페스토’가 신뢰감을 심어주어 표심이 노동당쪽으로 쏠리게 했던 것임은 물론이다.


      일본에서는 3년전 지방선거에서 ‘매니페스토’를 내건 정치 신인들이 초반 열세를 뒤집고 7명이나 현(縣) 지사에 당선되고 지방의회에도 대거 진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은 ‘매니페스토 단체장 연맹’과 ‘메니페스토 의원 연맹’을 각각 결성했으며. 시민단체들도 지역별로 ‘매니페스토 추진 네트워크’를 조직해 재작년에는 처음으로 전국적인 메니페스토 검증대회를 개최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구호에만 그치는 빈 약속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잡을 수 없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5.31 매니페스토선거추진본부’가 발족됐다. 이 단체에서 앞으로 각 정당과 지방선거 후보자들과 ‘매니페스토 운동 참여 협약식’을 추진해 나가면서 각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을 세밀히 검증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중앙선관위도 매니페스토 운동의 확산을 도모해 나갈 것이라 한다.

      즉. 내달 중 각 정당 대표들이 참여해 ‘정책선거실현협약식’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뿌리깊은 흑색·비방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저질 선거운동이 꼬리를 감추게 될 것 같아 자못 그 귀추가 주목된다.


      누구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부정·부패 선거가 더이상 이 땅에서 준동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유권자들의 깨어있는 민주시민정신에서 태동했다고 본다. 현란한 말주변으로 유권자들을 농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출마예정자들은 김치국부터 마시지 말고 일찌감치 속을 차릴 것을 충고한다. 칠면조를 방불케 하는 변장술과 ‘안자(晏子: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를 능가하는 능변도 진실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아무런 효과도 발할 수 없는 매니페스토(정책 공약) 시대의 위력을 실감할 때가 왔음을 직시해 주기 바란다.

    목진숙(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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