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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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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 내놔라

  • 기사입력 : 2006-03-06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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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놈 좀도적놈의 새끼야, 내 것을 가져가고 날 못할 일 시키느냐. 내 옷 내놔라.”
      판소리 `심청전' 중 딸 심청을 만나기 위해 황성길에 나선 심봉사가 목욕을 하고 나오니 의관과 봇짐이 사라지고 없다. 심봉사는 세상을 위해 “도적놈아 내 옷 내놔”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복이 되겠다'며 전국에 뜻있는 인사들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줄잇는 현장을 보면서 불현듯이 심봉사의 분노와 울분이 귓전을 때린다.

      심봉사의 외침이 `오늘'과 겹쳐지는 것은 무슨 때문이며 최연희 의원, 이해찬 총리, 전여옥 의원 등 지면을 장식한 공복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이어 `내 옷을 빼앗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스치는 것은 무슨 우연일까.

      후보나 입지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열심히 하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약속하고 언론을 통해 각오를 밝힌다.

      그러나 이것도 선거운동 때 뿐이다. 살기 바쁜 주인들은 머슴(공복)의 자질을 평가하기가 힘들고 `여론의 창'인 언론도 객관성 부족을 이유로 제대로 된 검증보다는 중계방송에 그친다. 게다가 `시민의 날'이니 무슨 행사니 하는 곳에 가면 머슴이라는 자들이 높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당연한 일에 대한 공치사에 훈계까지 한다.

      머슴들이 나의 옷을 입는 것은 놔두더라도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이나 세비를 받아 가면서 짐짓 잘못이 있어 “옷을 벗으라”고 하면 뒷짐을 진 채 얼버무리기 일쑤다.

      이러니 “좀도적놈아, 내 옷 내놔”라는 말이 이 시대에도 유효한 게 아닐까.
      다행히 심봉사는 의관과 노자(路資)를 주는 공복 무릉태수를 만난다. 5·31 지방선거에서는 내 옷을 빼앗아 입는 인물이 아니라 배를 불려주고 살림도 살찌우는 제대로 된 공복을 만날 수 있을까. 주인이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고 검증할 일이다. 이병문(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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