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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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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WBC 경제학

  • 기사입력 : 2006-03-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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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야구대표팀이 WBC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함으로써 4년 전 축구 월드컵 4강 신화에 버금가는 환희를 우리 국민에게 선사했다. 야구의 변방국이 아시아의 종주국 일본을 침몰시키고 세계의 종주국 미국마저 무너뜨리는 믿기 어려운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전 세계도 놀라고 우리 자신도 놀랐다. 내친 김에 우승까지 바라본다는 야심도 감추지 않는다. 4년 전의 축구와는 달리 이번에는 우승이 단순한 기대만은 아닌 것 같다. 기술과 전략의 승리를 넘어 애국심의 승리라고들 한다. 선수들의 병역 면제 혜택 부여 여부를 두고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다. 운동장에 태극기를 꼽는 쇼비니즘(광신적 애국주의)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태평양을 건너 온 승전보가 국민통합에 기여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한껏 고조시킨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기쁨을 억제하는 것이 반드시 미덕은 아니다. 더불어 공감할 줄 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장점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고무된 감정이 가라앉길 기다려 모든 스포츠 이벤트가 그렇듯이 이번 WBC 대회의 이면에 숨겨진 경제적 노림들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야구의 최강국이자 주최국인 미국은 이 대회를 창설하여 아직은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만 즐기고 있는 야구를 진정한 글로벌 스포츠로 격상시키는 계기로 삼음과 동시에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나름의 경제적 이득을 추구한다.

      WBC 같은 국제대회를 통해 탄생하는 야구 변방국의 우수 선수들을 일정한 연봉을 대가로 메이저 리거로 뛰게 만든다면. 이 선수들의 출신국에서는 메이저 리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적어도 자국 출신 선수의 소속팀의 경기를 TV 중계하게 될 것인 바 이것을 통해 막대한 중계료와 광고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한다. 나아가 야구가 세계화되면 될수록 그래서 더 많은 나라들이 야구를 즐기고 또 세계대회에 참가할수록 야구라는 상품의 시장 규모는 그만큼 더 커질 것이고. 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은 이 확대된 시장이 가져다줄 이득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또한 주목할 점은 이번 대회의 조직과 진행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미국은 야구의 세계화에서도 미국식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자국에 유리한 편파 판정. 세계대회에 미국인 심판의 기용. 비상식적인 조편성 등 미국의 일방주의가 적나라하게 관철되고 있다. 이러한 작태가 야구의 세계화를 바라는 미국의 의도와 모순되는 것이라면. 경제의 세계화를 관장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대부분 미국식 스탠더드라는 사실과는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어떤 경제적 노림이 있을까. 축구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상당수의 한국 선수들이 유럽 빅 리그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야구선수들의 미국 진출이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이승엽 등 몇몇 선수는 메이저 리그 진출과 막대한 연봉을 예약한 거나 다름없다. 이들이 벌어들일 외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선수들의 수입은 한껏 올라간 ‘대-한민국’이란 브랜드의 가치에 비하면 별 게 아닐 수도 있다. 88올림픽과 한일월드컵 덕분에 국가 브랜드의 가치가 얼마나 상승되었는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이번 WBC 쾌거 역시 그에 못지않은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국가 브랜드의 가치 상승이 당장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을 키워줄 지는 모르지만 그대로 경제적 이득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과업은 우리의 기업. 국민 그리고 정부의 몫이다. 예컨대 그것은 더 많은 가치를 갖게 된 국가 브랜드를 제품 판매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한국에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될 세계인들을 어떻게 하면 한국을 직접 방문하는 관광객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른바 한류와는 어떻게 연계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국가 브랜드의 가치 상승은 오직 우리 제품의 판매와 우리 문화의 전파를 통해서만 경제적 이득으로 전화될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더 올릴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겠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 기업과 국민이 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현명함도 가져야 한다. 사실 우리의 스포츠 수준이 세계 수준을 따라잡는 속도에 비하면 우리의 스포츠 마케팅 수준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가 브랜드. 스포츠. 상품 나아가 문화를 연계시키는 종합적인 전략과 실행계획을 짜야할 시점이 이미 와 있다. (서익진 객원논설위원·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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