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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로스쿨法. 이대로는 안 된다

  • 기사입력 : 2006-03-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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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써 10년이나 지난 얘기지만. 필자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 로스쿨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난 학생과 그로부터 받은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이버스페이스와 법’이라는 과목을 청강하면서 만난 그 친구는 스탠포드 대학 공과대학원에서 컴퓨터 전공으로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로스쿨에 입학했는데. 입학 동기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세계 최고의 컴퓨터 관련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HP의 설립자 휼렛과 패커드. 야후의 창시자 제리 양을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공학박사 변호사가 컴퓨터나 인터넷과 관련한 분쟁에서 한국의 변호사와 대결한다면. 승패는? …식은땀이 석 섬(冷汗三斛)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법이다. 그러면서 이제 막바지에 이른 듯한 로스쿨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위눌린 듯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릴 수 없다.

      작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 금년 초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시간표는 어그러졌지만. 2008년부터 로스쿨을 발족시킨다는 기존 방침에는 변화가 없음을 정부가 천명하고 있고. 이를 위하여 국회도 작년 10월 27일 정부가 제출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속칭 로스쿨법)안을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하여 심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1995년 김영삼정부 하의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논의만 무성하던 로스쿨제도 도입이 10여년 만에 드디어 성사 단계에 이른 것은. 우리 법조와 법학의 발전을 위하여 기념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로스쿨의 도입은 단지 법학교육을 학부 과정에서 할 것인지 대학원 과정에서 할 것인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법학교육의 방법과 내용. 법조인 충원의 방식과 수. 나아가 법원·검찰과 재야법조 간의 역학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야말로 사법개혁의 한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는 로스쿨 법안은. 수많은 법학계 인사와 시민단체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듯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로스쿨의 설치를 인가제로 하고. 정부가 전국 로스쿨의 총정원을 결정한다는 구조가 그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로스쿨 도입의 근본 목적에 반한다.
    오랜 논란을 거쳐 로스쿨제도 도입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채택된 것은. 현재의 학부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법학교육과 사법시험으로 대표되는 법조인 선발제도가 치유불가능할 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자 고시공부에 매달려 법전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암기력 위주의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고. 일단 그 관문을 넘으면 경쟁의 걱정 없이 평생을 보장받는 기존 제도로는. 지구화를 표방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경쟁력 있는 법조인을 배출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법학교육의 비용 상승이라는 역효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이 우리나라 법률가 양성제도의 유일한 활로로 받아들여진 것은. 학부과정에서 인문·사회·자연·공학의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전문대학원에서 3년간의 집중적인 법학교육을 받음으로써. 법의 형식과 논리만이 아니라 그 규율 대상의 실체(요즘 유행하는 말로 컨텐트)에도 정통한 경쟁력 있는 법조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률시장의 경쟁력은 이러한 능력 있는 법조인의 수가 대폭 증원되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다. 지금처럼 신규 법조인 수를 연간 1천 명 수준으로 한정해서는. 이미 목전에 다가와 있는 법률시장 개방의 파고를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교수진과 시설을 갖추고 적정한 교과과정과 그 운영능력을 갖춘 대학은 숫자를 제한하지 않고 로스쿨 설치를 허용하고. 변호사시험도 정원제가 아니라 절대평가제로 운영하여 3년간 로스쿨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졸업자는 적어도 70% 이상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법률시장에의 진입 장벽을 제거하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법률시장에 효율과 형평을 아울러 가져오는 길일 뿐 아니라 우리 법조인의 경쟁력을 높여 지구화시대에 우리 산업과 문화가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 영 규(경남대 법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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