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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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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화보]사진에 담긴 3.15의거와 마산일보

  • 기사입력 : 2006-03-31 1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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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 3월 17일 마산일보 벽보판

    마산일보 벽보판에 1960년 3월 17일자 신문과 함께 3·15선거 마산시 개표결과가 붙어 있다. 당시 마산일보는 1면보도에서 3·15선거 중간발표를 인용해 이승만박사가 당선이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특보사진을 통해 1960년 마산시의 총유권자가 6만9천80명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3·15선거에서 자유당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씨가 4만3천29표, 민주당 후보인 장면씨가 1만5천166표를 획득한 것에서 당시의 부정선거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시위현장의 마산일보 취재차량

    1960년 4월께 성지여고 학생과 시민들이 불종거리에서 현재의 3.15의거탑까지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마산일보 취재차량이 보인다.


    김주열군의 시체유기 관련 기사 발표

    4월 18일 마산경찰서 박종표 경비주임이 김주열군의 시체를 유기했음이 확인됐다. 박 주임이 고백했다는 기사가 붙은 마산일보사 벽보판을 시민들이 보고 있는 장면.


    계업사령부 발표문과 특보

    4월께 벽보판에 붙은 계엄사령부 발표문과 특보.
    당시 계엄사령부는 각 지구별인명피해 현황을 고시했는데 서울에서 97명, 부산에서 11명, 광주에서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옆의 특보에는 국무위원들이 총사표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외국기자들 마산일보서 취재

    1960년 3월 17일 마산 현지에 도착한 외국기자들이 마산일보에 들러 진상을 청취하고 있다.


    1960년 마산일보 편집국

    1960년 마산시 중앙동에 위치한 마산일보사내 편집국 전경. 왼쪽부터 고창조, 성호봉기자, 여진 편집부장, 이정영, 윤희룡기자. 오른쪽 뒤는 변광도 주필.


    60년 4월의 마산일보사

     1960년 4월 마산시 중앙동에 위치한 마산일보사 전경. 경찰은 김주열 열사가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직후인 4월 13일(추정) 시위가 격렬해져 신문사가 점거될 것에 대비해 경비병력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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