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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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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초짜 '지리산 종주기'

  • 기사입력 : 2006-11-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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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발 두발 걷다보니 천왕봉에 섰더라


    노고단~천왕봉 25.5km 이틀간 일정

    울퉁불퉁 돌길·거센 바람·천둥·우박까지…

    부은 다리 파스 뿌려 달래가며 도착한 정상

    산허리 둘러친 운무 내려보니 "이 맛이구나"

    산은 항상 제자리에 있는데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지난 4~5일 머리를 땅에 묻고 1박2일 동안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하나 둘. 하나 둘. 헉~. 헉~.”

    하루에 9시간이 넘는 산행속에서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한발 두발 걷다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앞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2~3시간 늦다는 시간이 문제이지 정상에 오르면 똑같은 종주다.

    ▲창원에서 오전 8시30분 출발. 아주 늦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임걸령샘. 삼도봉. 화개재. 연하천대피소. 벽소령대피소까지가 첫 날 일정.

    무박 1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를 단번에 종주하는 산행전문가들도 있단다.

    지난해 중산리~천왕봉~세석대피소~중산리를 하루 코스로 다녀온 뒤 이번 산행이 2번째. 무리해서는 안된다. 산을 만날 때는 겸손해야 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차편으로 성삼재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노고단까지는 한 시간 걸린다. 가볍게 다녀오는 산행객들은 노고단을 찍고 다시 성삼재로 내려온다.

    산길에서 비박을 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지리산 주능선을 탄다

    지리산 종주는 산행객들이 꼽는 최고의 종주코스. 7~8월 여름휴가철에는 80만명이 넘는 산행객들이 지리산을 찾는다. 이중 4분의 1은 종주를 한다.

    보통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1천507m)에서 주능선 25.5㎞를 타고 정상인 천왕봉(1천915m)까지 걷는 것을 말한다.

    첫 날 목적지 벽소령은 달빛이 워낙 밝아 푸른 빛이 돈다고 해 푸른 벽자를 붙여 벽소령이다. 5일이 보름이라. 4일 밤을 벽소령에서 묵는 우리는 만월에 가까운 달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본다.

    ▲헤드램프를 켠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6시. 산장 예약을 해둔 벽소령대피소까지는 2시간 거리.

    산중의 해는 오후 6시가 안돼 넘어간다.

    산행이라 흙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리산은 극히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온통 돌길이다. 크고 작은 돌을 딛고 발길을 옮겨야 하는 곳.
    늦은 출발이 발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온통 암흑천지. 처음 머리에 둘러쓴 헤드램프가 앞길을 밝혔지만 산은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선발대는 이미 대피소에 도착했지만. 우리 팀은 겨우 밤 8시30분이 돼서야 안착했다.

    ▲산장에서의 하룻밤

    날씨 탓인지 벽소령의 푸른 달이 흐릿해서 안타깝다. 땀이 식자 뚝 떨어진 기온과 거센 바람을 체감하게 된다.

    취사장에서 구워먹는 삼겹살과 소주 한 잔. 설익은 밥은 하루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했다.

    누울 곳이 있고 배가 부르다는 것은 사람을 안일하게 한다.

    산장 안. 오랜만의 산행이라 허벅지와 종아리가 퉁퉁 부어 있다. 샤워를 하듯 스프레이 파스를 온몸에 뿌리기 시작한다. 맞은 편에서 잠을 청하는 산행객이 한마디 던진다. “파스는 밖에서 뿌리고 오세요.”

    방안을 가득 메운 파스냄새를 맡고서야 내 생각만 했다는 무안함이 밀려온다.

    ▲또 늦은 출발

    새벽 5시 기상. 화장실이 급해서 일어났다는 말이 맞다.

    12명 일행의 산행 계획은 오전 7시 출발. 모두 피곤했던지 눈만 뜬 채 미동을 하지 않고 누워있다.

    대피소로 쳐들어 올 것 같이 안개들이 산을 타고 오른다.

    산중 날씨는 모른다고 하지만 일기가 심상치 않다.

    떡국으로 아침을 챙긴 뒤 오전 8시30분이 되어서야 이튿날의 산행이 시작됐다.

    ▲30분간의 천둥과 우박

    둘째날 일정은 벽소령. 선비샘. 세석대피소. 장터목대피소. 천왕봉. 법계사. 그리고 중산리.

    우리에게는 빠듯한 코스다. 강행군을 해야한다.

    점심은 장터목대피소에서 먹기로 했다.

    큰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나무들이 머금은 안개비가 떨어질 때는 마치 비가 오듯 느껴지기도 한다.

    질퍽한 돌길. 산길. 일행은 지쳐가고 세석대피소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떡라면으로 요기를 시작하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다.

    삽시간에 내리는 빗줄기가 큰 비를 예고하는 듯하다. 정상에서 듣는 천둥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콩알만한 우박도 동반했다.

    ‘아~. 이대로 하산해야 하나.’

    진한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하산이 싫지 않은 것은 왜일까.

    30분이 지났을까. 산중 날씨는 모른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온 산을 뒤덮은 먹구름은 온데 간데 없고 눈부신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또다시 산행이다.

    ▲정상을 향해

    장터목대피소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물론 산다람쥐처럼 빠른 일행도 있었지만 전체 보조를 맞춘 결과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 순전히 오르막이다.

    ‘40분이면 된다’. ‘한 시간이면 된다’ 등 제각각이다.

    하루 코스로 오르는 중산리~천왕봉(5.5km) 코스의 급경사에 비하면 장터목~천왕봉은 순탄하다 할 수 있다.

    땅에 코를 박고 1시간 남짓 산을 오르니, 어느덧 천왕봉이다.

    제석봉 산허리를 운무가 휘감아 돌더니. 이내 천왕봉 아래 골짜기로 곤두박질친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고행을 마다않고 다시 지리산을 찾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박영록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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