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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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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등록문화재 (1)가야문화권

  • 기사입력 : 2007-01-04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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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택가 사이·시내 한복판·도로 옆·군대 안…

    역사는 멀리 있지 않았네


    우리 근대사에는 지역 역사·문화의 뿌리가 되고 한 시대 조형의 모범이 되며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 등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들이 산재한다.

    이를 위해 등록문화재 제도가 2001년 7월 도입됐고. 시행 5년여만에 등록 문화유산이 319건에 이르렀다. 이는 1876년 개항 이후 6·25전쟁까지 근대에 걸쳐 조성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결실이다.

    하지만 기존 지정문화재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약한 등록문화재는 등록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부분 근대문화유산이 현재까지 활용되고 있어 재산권 침해를 우려한 소유자들의 반발이 첫째이고. 생활양식의 변화와 개발논리 등에 의해 보존가치를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氣찬주말'은 경남을 가야문화권(창원 마산 진해 김해 밀양 양산 함안 창녕)과 한려해상권(통영 사천 거제 고성 남해). 서북부권(진주 의령 하동 산청 함양 거창 합천) 등 3권역으로 나누고. 3차례에 걸쳐 경남의 등록문화재 34건을 권역별로 되짚어 본다.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창원시 소답동 131-14)

    1940년대 주택으로 근대조각의 이정표이며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우성 김종영 선생의 생가. 근대한옥 양식으로 치목이 정교하고 비례가 아름답다.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수납공간과 높은 다락. 유리문. 환기창 등 현대 주거적 요소가 곁들여진 건축물이다.

    ▲마산 구 마산헌병 분견대(마산시 월남3가 8-11)

    1926년 건립.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적 기관인 헌병대 건물로 현재는 충호회 경남지부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시대 관공서 건축물로 당시 권위적 시대상을 반영한다.

    ▲마산 봉암수원지(마산시 봉암동 88)

    1930년 당시 창원면 반룡산(현재 팔용산) 계곡에 설치된 석축 콘크리트조 수원지. 급수 방식은 자연유하식이며. 저수량은 60만㎥. 일제시대 축조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생활사적 가치가 있다.

    ▲진해역사(진해시 여좌동 761. 760-42)

    진해는 일제에 의해 해양 군사도시로 개발됐으며. 철도는 진해와 내륙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1926년 건립된 진해역사는 당시 건립된 일반적인 지방 역사의 형식과 규모가 온전히 남아 있다.

    ▲진해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진해시 근화동 16-1. 18)

    193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해 해군통제부의 병원장이 거처하던 곳. 현재는 주택 일부를 음식점으로 변형. 사용하고 있다. 근대 일식 목조가옥으로 내·외부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진해 구 진해요항부 사령부(진해시 현동 23-1)

    1914년에 건립된 르네상스 양식의 붉은 벽돌조 3층 건물. 광복 이후 미군정청에서 사용하다. 1949년부터는 재무부 관재처로 사용됐다. 건물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진해 해군의 역사를 간직했다.

    ▲진해 구 진해요항부 병원(진해시 현동 23)

    1912년 건립 건물. 1949년 재무부 관재처로 사용됐으며 2000년 육군에서 해군으로 이관. 현재 해양의료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교한 벽돌쌓기와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입면. 공간구성이 특징이다.

    ▲진해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진해시 현동 72-4)

    1912년 건립. 현재는 해군작전사령부로 이용되고 있다. 적벽돌 조적조로 화강석으로 만든 창문 상하 인방석. 필라스터. 높은 페데스탈 등을 입면에 사용해 건물형태가 화려하고 조형성이 뛰어나다.

    ▲진해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 별관(진해시 현동 72-4)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 본관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본관의 장엄하고 화려한 구성과 비교해 별관은 단아하고 간소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밀양 삼랑진역 급수탑(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156-1)

    철로면 하부는 석조. 상부는 철근콘크리트조로 석조무늬를 표현하기 위해 줄눈을 설치하였다. 상부에는 철제 물탱크를 설치하였으며. 기계실 출입구는 별도의 지붕을 가진 포오치 형식으로 기계실 진입공간을 따로 확보하고 있으며. 기계실 진입부의 지붕틀은 골함석 지붕에 당시의 목조트러스 구조를 잘 나타내고 있음. 급수탑 재료가 석조에서 철근콘크리트조로 넘어가는 철도 급수탑의 시대별 변천 과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철도역사상 귀중한 자료임.

    ▲밀양 교동 손병구 가옥=(밀양시 교동 779)

    전통양식으로 건축된 근대초기 한옥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의 배치 및 평면구조가 잘 남아있고. 전체적인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한옥의 변천과정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밀양 향교와 밀성 손씨 집성촌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의 향교. 한옥들과 함께 집단적인 문화재로 보존 및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밀양 퇴로리 이병수 가옥=(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313)

    여주 이씨 집성촌 마을 내 밀양 퇴로리 고가(경남 문화재자료 112호)의 전면에 위치하고 있는 가옥이다. 밀양 퇴로리 고가와 이병수 가옥은 중문에 의해 내부적으로도 상호 연결되어 그 구성이 독특하다. 근대초기 전통양식으로 건축된 한옥으로 안채. 사랑채. 중문채의 배치 및 평면구조가 잘 남아있어 뛰어난 평면 구성 방식을 엿볼 수 있으며. 20세기 초 한옥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주는 가옥이다

    ▲밀양 상동터널(밀양시 상동면 옥산리 887)

    1905년 이전에 건립 추정. 길이가 각각 40m. 60m인 2기의 터널로 경부선 개통(1905년)을 위해 건립됐다. 1960년대 초 경부선 철도 노선이 변경되면서 이후 바닥의 철로 자리를 콘크리트로 포장해 지금은 자동차와 보행자 통행용 터널로 이용되고 있다. 견치석과 적벽돌을 사용한 조적조 철도터널로 콘크리트조 철도터널이 보급되기 이전의 터널 구조기술과 형태를 간직. 철도사 및 건설기술사적 가치가 있다.

    ▲밀양 구 밀양역 파출소(밀양시 가곡동 662-78)

    1920년대 건립 추정. 밀양역 앞에 위치해 일제시대 한국인을 통제. 억압하던 치안 관련 건물인 역전파출소이다. 1980년대 이후 부산항운노동조합 북부연락소 밀양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공간은 단일 홀 형식으로 단순하게 구성됐고 내외부 벽체. 내부바닥. 지붕 등은 근대건축 초기의 일반적인 재료와 구법을 잘 보여준다.

    ▲밀양 기산리 구 비행기격납고(밀양시 상남면 기산리 1378 외 1필지)

    1940년 전후 건축물. 비행기 격납고 2개 동으로 곡면형 일체식 구조에 전면에는 아치형 개구부를 설치했다. 1945년 광복으로 일제는 비행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현재 농업용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시대 전쟁 준비상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창녕 남지철교(창녕군 남지읍 남지리~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남지철교는 1900년 가설된 국내 최초 강철교인 한강철교와 1911년 가설된 압록강 철교에 이어 1931년 구마 국도상에 가설됐다.
    창녕과 함안 사이 낙동강에 걸쳐진 근대식 트러스 교량이다. 70여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킨 남지철교는 6·25를 겪는 등 애환이 깃들어 있다. 근대사에 중요한 다리이다. 철근콘크리트 T형교로 상부 철골교의 트러스는 교각부분을 더 높게 설치. 마치 물결치는 듯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박영록기자 pyl21c@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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