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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등록문화재 (2)한려해상권

  • 기사입력 : 2007-01-11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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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과 몇십년 전 역사와 삶은 이랬다고…

    빛바랜 흔적들이 말해줍니다


    경남을 가야문화권과 한려해상권. 서북부권 등 3권역으로 나눠놓고 보면 역사와 전통. 산과 바다. 인간과 자연 등 제각각 특색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통영 사천 거제 고성 남해에 걸쳐있는 한려해상권은 경남도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남해안시대의 중심이며 청정해역과 자연경관은 한려수도의 바탕이다.

    임진왜란 때는 옥포와 당항포. 노량 등 이순신 장군이 대첩을 거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근대사의 아픈 기억과 전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이 곳곳에 있다.

    한려해상권내 등록문화재 7곳의 문화재적 가치와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통영 구 통영청년단회관(통영시 문화동 236)

    일제강점기 통영의 애국자와 선각자들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사회계몽운동을 전개한 역사적인 장소였다. 현재에도 1층은 문화원으로. 2층은 때를 놓친 학생들을 위한 야학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일정부분 수리를 했기 때문에 건물 내부는 다소 변경됐으나 외부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다른 지역에도 청년단회관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지역내 문화운동과 민족정서 함양을 했던 현존하는 건물은 매우 드물다.

    ▲통영 구 통영군청(통영시 도천동 28)

    일반적으로 시청이나 군청 등 관공서 건물은 개축·증축을 하지만 구 통영군청은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1943년 군청으로 지어져 통영시청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2002년부터 윤이상 페스티벌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신고전주의에서 합리적 근대주의 양식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외관은 건립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의 장소로 용도를 변경해 적절히 활용되고 있는 사례이다.

    통영시는 윤이상 음악당이 지어지면 미술전시관 등 예술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계획도 갖고 있다.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통영시 문화동 228 외 2필지)

    통영시 문화동과 명정동을 가르는 산 언덕에 위치해 있다.

    배수시설은 각 지역별로 독특한 건축적 특징을 보여주는 근대 시설물이다. 특히 문화동 배수시설은 일제강점기 건축문화적 성향과 표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시설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최근 시설물 일부가 파괴됐지만 근대 건축 특성을 갖춘 훌륭한 건축물이다.

    건축양식은 독일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배수지 겸 정수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배수시설과 관련해 남은 과제 중 하나는 이 자리에 군영의 최고 장수를 상징하는 독기(통영에서는 뚝지로 발음)를 모셔다 놓은 뚝사당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통영 통영해저터널(통영시 당동~통영시 미수2동)

    통영에서는 통영해저터널 조성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 충무공에게 쫓기던 왜적들이 다급해지자 땅으로 연결되어 있던 통영과 미륵도 사이에 수로를 내어 달아났다는 것이다.

    이후 일제시대에 통영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수없이 전몰한 이곳을 지상으로 건너갈 수 없다고 해서 해저터널을 놓았다고 한다. 지금도 통영에서 이곳을 판데목(판 곳)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1932년 건립된 통영해저터널은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이며.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근대기술에 의한 동양 최초의 해저구조물이다.

    터널부는 철근콘크리트조이며. 터널 입구는 목조기둥에 왕대공트로스 구조이다. 구조 자체도 견실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해 지역사적·토목기술사적 가치가 있다.

    입구에는 해저로 들어가 육지로 나온다는 뜻의 '용문달양'이라는 글귀가 있다.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917-1등)

    현재 40~50가구가 살고 있는 학동마을은 과거에 전주 최씨 부자마을로 이름난 곳이다.

    한창 때는 이 마을 한 곳에서만 만석꾼과 천석꾼이 4~5명이나 있어 진주. 사천. 고성 등에 두루 땅을 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학동마을의 담장은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두께 2~5㎝)과 황토를 섞어 쌓은 것으로.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담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석축을 쌓아 조화를 이뤘다.

    마을 안의 긴 돌담길뿐 아니라 바로 앞에는 남해바다가 있고 마을 주변에는 대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어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이기도 하다.

    ▲거제 학동 진석중 가옥(거제시 동부면 학동리 315)

    광복 이후 1947년에 건축된 지방상류층 살림집이다.

    동서의 긴 사다리꼴 대지에 안채(본채). 별채(건너채). 창고(광채). 대문 등으로 이뤄졌다.

    1940년대 말 남해안 도서지방 상류층의 주거 특징과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근대기 주택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보존가치가 있다.

    ▲남해 덕신리 하천재(남해군 설천면 덕신리 958)

    1938년에 건립된 사묘재실로 하천재(荷泉齋)를 중심으로 경모헌(景慕軒)과 세심헌(洗心軒)이 대칭으로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대문채와 화장실을 포함해 총 5채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인 하천재는 전통적인 재실건축의 강당과 사당의 기능을 한 동에 결합한 형태로. 평면 중앙부에 사당을 두고 선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 근대기에 들어와 강당에 사당을 병설하는 재실건축의 새로운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박영록기자 pyl21c@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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