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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겨울산과 어머니

  • 기사입력 : 2007-02-28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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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가 온다. 인적을 지우듯 비가 내리고 산사는 적요하기만 하다. 우산을 받쳐 들고 산길을 걸었다. 바람에 실려 온 빗방울이 뺨을 적신다. 뺨을 타고 내린 빗물이 입가에 머물다 떨어져 내렸다. 빗물의 온도가 아직은 차다. 동백이 피고 매화나무 가지가 꽃 몽우리를 애써 받쳐 들고 있지만 아직 햇살은 매화의 개화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아직 꽃이 피기는 이른 시간이다. 전령처럼 다가와 있는 동백의 붉음이 차라리 애처롭다.

    이제 계절의 색깔은 사라져 가는 것인가. 산길을 걸으며 나는 짧아진 겨울을 향해 물었다. 눈이 내렸어야 하는 하늘에 비가 내리는 시간들이 내게는 흡족하지가 않은 것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어릴 적 겨울은 얼마나 추웠던가. 언 뺨을 가지고 들어가면 ‘아이고. 내 새끼’ 하시며 뺨을 부비시던 어머니 뺨의 온도가 그 시절에는 유난히 따뜻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다 말고 안아주시던 어머니의 가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것이기도 했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어머니의 사랑을 내게 선물했던 것이다. 겨울이 되면 나는 그런 어머니의 체온을 떠올린다. 겨울이 좋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어머니가 추억이 되었듯 이제 그런 겨울은 추억으로만 남아있게 될는지도 모른다. 비를 맞으며 나는 눈이 수북이 쌓이던 겨울을 그리워한다.

    비가 오래 내리면서 산에는 안개가 가득 피어올랐다. 지척의 산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나타났다 바람이 자면 사라지는 산의 모습이 포근하다. 산이 마치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것만 같다. 안개는 겨울산의 냉혹한 표정들을 다 지우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혹독한 세상을 사시면서도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다가오던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사랑으로 자신을 두르고 내게 다가왔다. 어머니의 아름다움은 시련을 이겨내고 펼쳐 보이신 그 사랑에 있었던 것이다. 안개를 두른 겨울산 앞에서 나는 어머니의 시린 한 생애와 사랑을 떠올린다.

    겨울산의 안개는 메마른 시간을 견뎌낸 산의 그윽한 표정을 내보인다. 어머니 역시 혹독한 세상의 아픔을 이겨내고 온통 사랑으로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이셨다. 겨울산과 어머니는 무엇으로 자신을 두르고 살아 갈 것인가를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무엇을 두르고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인가. 성냄과 어리석음과 흔들림이 나를 감싸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아주 작은 삶이었다. 안개를 두른 겨울 산 앞에서 나는 그런 작고 각진 삶이 부끄러웠다. 나를 감싼 것이 사랑과 자비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탄식처럼 새어나왔다.

    겨울비 내리는 산사를 거닐며 나는 세상의 시련을 이겨낸 것들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보았다. 성전스님(남해 호구산 용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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