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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병원에 가면

  • 기사입력 : 2007-07-04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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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면 1=조용한 병원에 늘 활력을 주는 것은 역시 아이들 몫이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링거병을 꽂고서 치달리기 경주를 하듯 병원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당연히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 아이들이 아픈건지 아니면 병원에 놀러온건지 구분이 안된다. 그래도 따분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병원 분위기를 확 바꿔놓으니 그런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때로는 나도 그 아이들과 병원복도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기도 한다.

    장면 2=점점 얼굴은 장작개비처럼 말라가는데 팔. 다리 근육은 퉁퉁 붓고 배에는 복수가 가득차 오고 심한통증으로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간다. “신부님 ! 하느님은 왜 저를 빨리 데려가시지 않는 걸까요?” 저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할머니의 손을 꼭잡아 드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 뿐이지만 한평생 자식들 뒷바라지 한다고 고생만 하셨는데 죽음의 길목에서조차 왜 저리 고통스러우신지 평안한 임종을 바라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며 기도드려 본다.

    두 장면이 서로 대비되는 것 같지만 매일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병원사목을 하면서 환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신부님 !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부모. 친척도 멀리하고 나를 업신여겼던 사람들을 미워하며 돈만 보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큰 병을 얻고 나니 지난 내 삶이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환자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중병으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과 더불어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고 많은 이들이 고백합니다.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정신없이 살았는데 그러다 병이 걸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오는지 원망도 하고 미워도 했지만 이젠 받아들일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우리에게 닥쳐온 삶의 시련과 고통이 한편으로 축복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왜 그 의미를 병이 들어서. 이렇게 늦게나마 깨닫는 것일까요?

    사실 늦은 것도 아니지요. 영원히 원망만 한 채 생을 마감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고통과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십자가가 돈이나 명예. 권세일 수도 있고 혹은 자녀나 남편, 아내일 수도 있고 때론 평생 따라다니는 내 몸의 중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나 고통은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없어진다면 그것은 나의 십자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고통이 나에게 축복일 수 있음을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 속에서 찾아봅니다.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기쁘게 복도를 활주하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죽음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환우들 속에서. 나에게 많은 느낌표를 던져주는 나의 스승들입니다.
    최경식 야고보 신부(파티마병원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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