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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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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나는 세상] 경남표 전통 면요리

  • 기사입력 : 2007-07-12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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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 냉면- 화려함 속 시원한 첫맛

    의령 소바- 소박함 속 얼큰한 뒷맛


    밥보다는 국수가 입에 당기는 계절이다. 시원한 냉국수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줘서 반갑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국수는 시~원한 뒷맛으로 여름을 사로잡아 버린다. 거기다 새빨간 비빔국수는 보기만해도 군침이 돈다. 한여름 무더운 더위에 늘어진 몸과 깔깔해진 입맛을 밥 대신 국수로 말아 보자.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경남표 전통 면요리를 찾아 나섰다.

    ▲ 진주 냉면

    ‘냉면 중에 제일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
    북한 평양과학백과사전 종합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의 민족전통-식생활풍습(1994)’에 기록된 말이다.
    평양냉면 유명한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진주냉면은 다소 생소하다.

    진주냉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쪽에선 제법 유명한 고급 음식이었다. 진주의 권번(기생들의 조합)문화가 발달했을 때. 진주기생들이 야참으로 즐겨 먹었고. 진주의 부유한 가정에서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평양식 냉면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육수를 해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 맥을 아스라이 잇고 있는 진주의 ‘진주냉면 본점’을 찾았다.
    진주 서부시장 안.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진주냉면집 앞에는 ‘남국의 맛. 진주냉면’이란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벽면에 진주냉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다.

    ‘진주식 물냉면은 평양식 냉면과는 달리 메밀을 주로 사용하여 면을 만들고. 새우. 멸치. 바지락. 다시마 등으로 해물육수를 내고. 소고기육전. 지단 등 아홉가지 고명을 얹어 그 모양이 화려하고 남국적인 맛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상 냉면의 최초기록인 ‘동국세시기’에 1849년 당시 진주의 냉면을 메밀국수에 무 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넣은 냉면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평양냉면은 동치미 무를 얇게 저며 꾸미로 올려놓는 반면. 진주냉면은 배추김치를 얇게 썰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맛을 안 보곤 배길 수가 없다.
    냉면을 주문하자 살얼음이 언 시원한 해물육수에 메밀국수와 쇠고기 편육. 육전. 오이. 배. 무. 배추김치. 석이버섯. 황백지단 고명을 얹어나온다. 보기에도 푸짐하다.

    해물육수는 육고기 육수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맛을 낸다. 고소하고 담백하면서도 달짝한 끝맛이 자꾸 손이 간다.
    메밀로 만든 쫄깃한 면도 별미. 특히 고명으로 얹인 육전은 진주냉면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이다.
    더운 날씨도 아니었는데. 냉면을 먹으면서 육수가 모자라긴 처음이었다.

    이 맛을 이어온 60년 손맛의 주인공은 황덕이(80) 할머니다.
    40년대 초반. 진주냉면 전문점에서 일하며 기술을 익힌 남편을 만나 시장에서 시작한 냉면장사가 입소문을 타고 사람을 끌면서 이젠 본점외 분점을 6곳이나 낼 정도로 번성했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새벽 2시에 일어나 육수를 내는 버릇은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비법을 묻자 “원재료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게. 비법이지 뭐”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황 할머니가 밝힌 육수 원재료는 버섯. 열합. 마른 명태. 문어 등의 해물과 기름기 없는 쇠고기 사태 등이다. 뭔가 아쉬운 듯 돌아서는 기자에게 할머니는 어패류에서 나오는 잡내를 제거하기 위하여 철(무쇠)을 이용해 순간가열 방법을 쓰는 것도 중요하고 귀띔해 준다.

    ▲ 의령 소바

    유명한 일본 소설 ‘우동 한 그릇’의 원제목은 ‘한 그릇 소바’다.
    일본말인 소바(そば)는 뜨거운 국물에 말아져 나오는 메밀국수를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메밀국수라 하면 흔히 차가운 국수를 떠올리기 때문에 번역자가 의도적으로 우동으로 바꿔 번역했다는 것이다.

    마음 착한 주인 덕에 세 그릇 양의 소바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던 두 아들과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 따뜻한 메밀국수를 맛보기 위해 의령을 찾았다.

    의령의 특미 ‘소바’는 일제시대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한 할머니가 따뜻한 일본식 메밀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자리잡기 시작됐다. 일본식 명칭인 ‘소바’는 50년 세월동안 굳혀져 이제 ‘의령소바’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돼버린 듯하다.
    긴 세월이 흐르면서 밋밋한 일본식 소바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화했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의령표 소바’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의령 읍내. 4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한 소바집을 찾았다.
    메뉴판은 간단하다. ‘온소바. 냉소바. 비빔소바’

    무더운 날씨에 냉소바를 시키려고 하니 주인 박시춘(50·의령군 의령읍 제일식당)씨가 만류하며 제대로 된 소바를 맛보려면 온소바를 먹어야 한다고 권한다. 전통 소바 국물은 온소바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것.

    소바를 내놓는 과정은 간단하다. 미리 뽑아 놓은 메밀면을 큰 가마솥에 넣고 익혀낸 후. 긴 젓가락으로 면을 저어 그릇에 담고. 살짝 데친 시금치와 볶은 양배추. 그리고 길게 찢은 쇠고기 장조림과 양념장을 얹고는 뜨거운 국물을 부으면 끝이다. 메밀면과 육수는 매일 아침 미리 준비한다.

    이 정도 스피드가 돼야만 한창 바쁠때 하루 200그릇씩 만들어 낼 수 있단다. 얼핏 둘러봐도 좌석이 30개도 안 될 듯싶은 작은 식당이다. 잠시 소바 전쟁(?)이 치러지는 가게의 모습이 연상됐다.

    온소바 한 그릇에 깍두기와 김치가 찬으로 나온다.
    허연 김이 훌훌 나는 온소바의 국물을 먼저 들이켜본다. 매콤하면서 얼큰한 국물에 아랫배까지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숙취해소용으로 동네주민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육안으로 보기에 보통 메밀국수보다 굵은 듯한 면 또한 생각보다 쫄깃하다. 부드럽고 고소한 메밀면에 고명으로 얹어진 장조림의 짭짤한 맛이 더해져 그 조화가 별미다. 100% 한우로 직접 조렸다는 장조림의 양이 제법 많다. 소바를 제대로 먹는 법은 면 한 젓가락에 장조림 한 조각을 함께 먹는 것이란다.

    박씨에게 속깊은 국물 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그냥 멸치를 다신 국물이라고 말한다. 평생을 멸치 다신 국물을 먹지만 뭔가 다르다. 재차 물었더니 보통 사용하는 큰 멸치가 아닌. 작은 멸치를 사용해 국물을 낸다고 귀띔한다. ‘원재료가 맛있어야 다신 국물도 맛있다’는게 박씨의 요리 이론이다. 거기다 장조림을 우린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매번 조금씩 다른 맛이 나기 때문에 매일 아침은 소바를 먹고선 시작한다”는 박씨의 소바 사랑은 비법을 전수해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아마 그 정성이 ‘의령소바’가 전국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 비법일 것이다.

    글=조고운기자 사진=성민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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