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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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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오빠'의 문화사 / 우무석

  • 기사입력 : 2007-09-28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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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고장에서는 / 오빠를 / 오라베라 했다. /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 오오라베 부르면 / 나는 /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었던 박목월이 쓴 ‘사투리’라는 시의 첫연이다. 시에서는 ‘오라베’라는 경상도 사투리의 맛있는 정감을 표현한 것이지만 기실 ‘오빠’로 불리고 싶어한 시인의 기분 좋았던 내면도 함께 읽힌다.

    ‘오빠’는 친족호칭으로서 여성화자의 같은 항렬되는 다른 성(性)의 손윗사람을 일컬음이고 ‘오라버니’와 ‘오라버님’은 그 공댓말이다. 반면에 남성화자는 같은 항렬의 다른 성(性)의 손윗사람을 ‘누나’나 ‘누님’으로 부르지만 ‘누이’라고 할 때만 손위 손아래를 나누지 않는다. 즉 ‘오빠’나 ‘누이’는 친밀한 혈연유대관계의 가족공동체 내에서만 사용되는 친족명칭인 것이다.

    그런 친족호칭들이 우리 사회에서 은유적으로 비틀려 사용된 지 이젠 꽤나 오래된 듯 싶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술집에만 가면 세대구분 없이 누구나 ‘오빠’가 되고. 젊은 여성들이 남자선배를 ‘오빠’라고 부르는데 스스럼이 없다. 실로 대한민국 남성들은 모두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오빠’로 지칭되면서 근친성의 사회구조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근대문학 속에서 다양한 풍속의 프리즘을 통해 근대성을 고찰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이경훈은 ‘최초의 오빠’로 이광수의 ‘무정’에 나오는 주인공 이형식을 꼽는다. 이형식은 어린 기생 계향을 ‘누이’로 소개하고. 계향은 그를 ‘오빠’라고 불러주어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안겨주었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 기생을 ‘누이’삼는 일은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일은 기존의 사회질서(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신분 질서에 맞서 계향이 부르는 ‘오빠’는 부부와 자녀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 가족관계의 은유로 인간의 평등한 관계를 매개”하면서 “본격적 신분파괴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근대국가의 국민으로 호출”되는 것이라고 ‘오빠’의 업적을 의미지었다.(이경훈. 『대합실의 추억』) 즉 계향이 이형식을 ‘오빠’라고 불렀기에 기생의 위치에서 벗어나 의사가족이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실로 세상 남녀가 오빠와 누이의 관계로 설정되면서 신분적 계급을 넘어서는 근대적 평등성이 구현되는 셈이며. ‘오빠’라는 말이 그 당대 사회의 세대징표로 기능하면서 개념의 사용범위가 넓혀진 셈이다.

    이리하여 ‘오빠’의 세력은 남성연예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오빠부대’가 생겨났고.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광적으로 지지하는 ‘노빠’에 이르러 그 한 절정을 이루었다. ‘노빠’는 ‘오빠’에서 파생된 변종 언어이지만 정치적 친위활동을 이끄는 새로운 계급언어이기도 하다. 내편과 네편을 가르는 분열적 의미를 담으면서도 그 한편으로는 386세대의 뿌듯한 자부심이 담긴 상징언어가 되기도 했다. 이는 ‘오빠(노빠)’의 사용이 정치논리의 판단에 앞서 그럴듯한 말과 이미지로 덧칠된 감성적ㆍ정서적 기분에만 빠져있다는 뜻이다. ‘노빠’의 탄생은 ‘오빠’의 감수성을 대중화시켰다. 그 말에는 권위를 없앤 노무현표 정치행태처럼 제 속살을 가리지 않는 솔직함도 있지만 자신의 비속함도 감추지 않겠다는 뻔뻔함도 가진 용어이기도 하다. ‘오빠’가 봉건성을 걷어냈다면 ‘노빠’는 절대적 권위성을 걷어냈지만 그 말이 지닌 자체의 비천함만은 걷어내지 못한 점이 오늘날의 사회현실을 반영한다.

    언어를 일부러 비틀어 쓰는 것이 아니라면 언어가 비틀리는 지점은 반드시 현실의 비틀림이 생기는 공간이다. 한국의 남성들이 술집에서 ‘오빠’로 불리는 지점에는 근친상간적인 성적문란이 숨어있기도 하고. 친족 사이 위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네트웍으로 공동체가 재구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빠’가 잘못 팔리면 세간의 입질에 오르내리면서 초췌한 모습의 변씨 꼴이 되기 십상일터.

    우무석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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