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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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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세탁기 속의 은화 500원

  • 기사입력 : 2008-01-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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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순은색을 참 좋아합니다.

    그 옛날 어머니의 은비녀며 아버지의 은수저, 할머니의 은반지.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의 은수저와 어머니의 은니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1996년 한여름 진주 상대동 고분 근처에서 한평생 은장도를 만들다 가신 임차출 옹의 공방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임차출 선생은 안경을 쓴 핼쑥한 청년과 함께 낡은 선풍기와 공방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 청년은 어렵사리 임차출 명인의 고려은장도 기능을 전수받아 지금은 의젓한 장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 옹의 아드님입니다.

    예전에 저는 공이 큰 지인들에게 은장도를 선물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12㎝ 고려은장도가 12만원을 넘었으니 조금은 부담이 되었지만 한 명인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초가을부터 3분의 1 주부가 되어 세탁기를 자주 쓸 기회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옷감과 날짜에 관계없이 빨랫감을 통째로 돌리다 옷들이 망가지는 날에는 퇴근한 아내로부터 꾸중을 듣곧 했습니다. 그래도 살짝 웃어 넘기는 작은아들 덕분에 이내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은빛 빨래통 밑에 보일 듯 말 듯 500원 은전의 학이 날갯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뜸 주워 들었습니다. 이후 저는 바지 호주머니를 뒤집는 빨래법도 터득했습니다. 가끔 천원권 지폐가, 한두 번은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파란 만원권을 챙기는 날도 있기에 빨래 일이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제일 부담없는 수입은 500원 은전입니다.

    요즘 금값이 1온스당 900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황금을 좇고, 챙기고, 재는 투기꾼들이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업용 자재, 금·은에 가까운 기능과 가치가 있는 니켈, 알루미늄, 동, 스테인리스 등으로 가공된 교통안전물의 훼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황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눌 수 없고 가질 수 없기에 어디서나 가격이 형성되는 금값이 치솟는가 봅니다. 그러나 금은 재화의 대체수단으로는 귀금속일지 몰라도 최상의 투자재원은 아닙니다. 귀금속이나 화폐의 양면은 물려받은 순수자연이라면 소중하게 쓰고 되돌려 줄 사람들의 경제가치입니다.

    보편적으로 아끼고·다듬는 경영철학, 나아가 경제정책으로부터 배우고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하갑돈(문화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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