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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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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예~ 묵 두그릇 나갑니더~

장터의 맛을 찾아 ① 거창장 ‘메밀묵국수’

  • 기사입력 : 2008-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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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창장 ‘묵골목’

    삶의 소금기가 배어 있는 장터.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살이 되고, 힘이 되어 주는 ‘장터의 맛’. 서민과 함께 숨쉬며 이어져 온 그 맛의 깊이는 현대화된 어느 음식점에서도 찾을 수 없다. 도내 장터 곳곳의 맛을 찾아 격주로 소개한다.


    북적북적 거창장 묵골목에 옹기종기 자리한 묵국수집

    메밀묵에 육수·고명 듬뿍 … 달큰한 맛에 한그릇 뚝딱

    봄이 내려앉은 거창읍 거창장.

    장사꾼들 소쿠리에 담긴 푸른 나물 빛깔처럼 장터의 활기가 창창하다. 사고 팔고, 먹고 즐기는 이들로 북적거리는 장터를 헤집고 도착한 곳은 ‘묵 골목’.

    거창장이 만들어지면서부터 함께 숨쉬어온 장터의 전통 있는(?) 골목이다.

    울퉁불퉁한 골목길, 세월 때에 그을린 시멘트 벽, 옛 냄새가 물씬 나는 간판, 가게 앞에서 말리고있는 메밀묵이 80년대 사진 속에 들어온 듯하다. 현재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는 건, 상가번영회에서 획일적으로 제작해 걸어 놓은 가게이름 팻말 정도다.

    골목에는 포항집, 대구집 등 ‘묵 전문’ 팻말을 붙인 가게가 줄지어 서 있다. 그중 한 곳인 ‘포항집’으로 들어섰다.

    음식 메뉴판은 없다. 문에 ‘메밀묵’만 큼지막하게 써있을 뿐이다. 어떻게 주문해야 할까. 그때 구석에 자리 잡은 아저씨가 걸쭉한 목소리로 외친다.

    “묵 두 그릇 주이소.”

    주인 아주머니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묵을 채썰어 그릇에 담고 그 안에 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혀 낸다.

    그랬다. 이곳에는 ‘묵’이라고 주문하면 모든 게 통했고, 묵국수, 묵채, 묵사발 어떻게 주문해도 같은 음식이 나온다고 했다. 그중 가장 통상적으로 불리는 게 ‘묵 국수’다.

    그렇게 주문한 ‘묵 국수’. 그릇에 소복이 담긴 길게 채썰린 묵이 맛깔스러워 보이지만, 젓가락으로 먹어야 할지 숟가락으로 먹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젓가락으로 몇번 시도해보지만 먹기가 시원찮다.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는 방법을 택한다. 국물과 함께 넘기는 메밀묵의 부드럽고 투박한 질감이 신선하다.

    멸치와 새우로 우려낸 국물에 양념장은 매콤하면서 달큰하고, 잘게 다진 김치와 김, 시금치, 참깨와 버무려진 메밀묵은 고소하고 담백하다. 그릇 한 가득 담긴 메밀묵을 비우니 배가 제법 부르다.

    가격은 2500원. 지난 1월 물가가 오르면서, 13년 동안 유지해오던 2000원에 500원을 인상한 값이다.

    메밀묵은 주인 아주머니가 매일 새벽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다. 간장도, 김치도 직접 담근 것을 쓴다. 그 맛을 증명하는 것은 좁은 가게 가득 찬 손님들이다.

    5년째 단골이라는 한 손님은 “봄 탈 때는 묵국수가 특효약”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가게는 주인 아주머니의 시어머니 때부터 이어져 왔다. 50년 전에는 골목에 의자와 테이블만 놓은 채 묵국수를 팔았다. 세월은 흘렀고, 골목의 난전은 작은 가게로 모습을 바꿨다. 그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고향인 ‘포항’을 가게 이름으로 내걸었다고.

    주인 아주머니는 “뭐라더라. 묵이 웰빙식품이고 다이어트도 된다면서 사람들이 일부러 멀리서 오기도 한다”며 웃었다.

    글=조고운기자 lucky@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거창장을 찾은 사람들이 메밀묵국수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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