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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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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 되는 푸른 여행

가파른 구릉지와 산비탈에 저절로 나고 자란 야생 차나무 가득 … 도심마을엔 수령 1000년 넘은 천년차나
빽빽이 우거진 소나무 숲길 지나 아찔한 산비탈길 오르면 폭포와 만나…사천왕수·환학대·휴게소도 볼거리

  • 기사입력 : 2008-05-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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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화개면 일대 야생차밭에서 아낙네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이준희기자/

    5월 하동은 녹차의 향기로 진동한다.

    연녹색의 새순이 고개를 ‘쏙’ 내밀 때쯤이면 화개면 일대는 은은한 차향기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녹차의 엷은 녹색물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가시고, 따뜻한 녹차를 한입 머금으면 상쾌한 떫은 맛과 은은한 쓴맛, 순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 같다.

    화개골 산등성이 차밭마다 찻잎을 따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른 아침 시작된 찻잎 채취 작업은 해가 질 무렵에서야 손을 놓을 수 있을 정도다.

    전남 보성, 제주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차 생산지로 유명한 하동에서는 21일부터 오는 25일까지 하동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하동 정금리 도심마을의 천년차나무.

    ▲하동 차밭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 시배지(始培地·도기념물 제61호)이다.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인근 비탈진 산등성이 입구에 이르면 이 곳이 차 시배지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김대렴공 추원비, 차능화를 널리 보급한 진감선사를 기리는 추앙비가 세워져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기를 명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선사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화개에서 생산된 차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조정에 진상되는 최고의 차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는 ‘중국의 최고 차인 승설차보다 낫다’ 하였고, 다성 초의 선사는 ‘신선 같은 풍모와 고결한 자태는 그 종자부터가 다르다’고 격찬할 정도다.

    차 시배지 안으로 들어서면 1~2m 가량의 들쭉날쭉한 차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차밭 사이를 지나 힘겹게 오른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차 시배지 일대는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리산 화개천의 맑은 계곡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동의 차밭은 보성 차밭과 달리 자연 그대로의 투박함을 간직하고 있다.

    산비탈에서 저절로 나고 자란 녹차가 바람에 씨앗을 떨어뜨려 번식해 가는 말 그대로 야생녹차다. 맛이나 향으로 따지면 야생녹차가 으뜸이다. 특히 차나무는 바위틈에서 자란 차나무를 최고로 치는데 지리산 자락의 바위틈에서 이슬과 바람을 먹고 자란 하동 야생녹차가 이러한 입지조건을 고루 갖췄다.

    차나무를 재배하기에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하동.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화개, 악양면 등 차 재배지 일대는 섬진강과 화개천에 인접해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밤낮의 기온차가 커 차나무 재배의 최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토양은 약산성으로 수분이 충분하며 자갈이 많은 사력질 토양으로 차나무 생육에 안성맞춤이다.

    쌍계사에서 칠불사에 이르는 화개면 일대를 중심으로 가파른 구릉지와 올망졸망한 산비탈에 흩어진 차밭에서 찻잎을 채취하는 시골 아낙네들의 모습이 정겨운 농촌 풍경 속의 일부분처럼 다가온다.

    차 시배지 인근 정금리 도심마을(촌)은 하동 전통차의 역사를 상징하는 수령 1000년이 넘는 ‘한국 최고차나무(천년차나무)’가 해마다 새순을 싹틔우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가파른 고갯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보니 산 중상부에 한국 최고차나무가 위용을 드러내며 손님을 맞는다.

    화개천 계곡 주변으로는 지산다원, 하늘호수, 도심다원 등 차밭만큼이나 많은 전통다실이 산재해 있다. 이곳은 농부들이 직접 차밭을 일궈 가꾼 차나무에서 잎을 수확해 만든 수제차를 판매하고 있다.

    하동차의 또 다른 맛의 비결은 ‘덖음’에 있다. 덖음은 차의 향과 맛을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차 고유의 독성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300~350℃의 무쇠솥에 찻잎을 2~3kg가량 넣고 2분30초에서 3분 가량을 덖은 후 끄집어낸다.

    마침 인근 하동차문화센터를 찾은 하동고교생들이 덖음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하동녹차체험단 강사 박종열(45)씨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센터 뒤편 차밭에서 수확한 찻잎을 재빠르게 덖어낸다. 두꺼운 장갑을 손에 꼈지만 뜨겁기는 매한가지다. 뜨거운 무쇠는 학생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아 “앗! 뜨거”라며 한 학생이 호들갑을 떨며 뒤로 물러난다. 이후 잘 덖은 찻잎을 하얀 수건에 싸 멍석에 비비는 과정을 거친다.

    박 강사는 “찻잎을 멍석에 비비는 것은 찻잎의 수분을 끄집어내는 작업으로 이런 작업을 거치고 나면 찻잎이 부드러워지고 향이 진해진다”며 비비기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하동고 박태용(18)군은 “친구들과 찻잎을 덖고 비비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며 “하지만 실제 녹차의 제조과정은 너무 어렵다”며 너스레를 떤다.

    다례체험장에는 남녀 학생들이 다소곳이 모여 앉아 차에 대한 인사와 예절을 배우는 시간을 갖고 있다.

    김명애(45) 체험관장은 학생들에게 행다(차를 우려내는 순서)와 하동차와 전남 보성차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하동 군민 모두가 하동녹차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홍보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일폭포

    하동 차 시배지와 천년차나무, 차문화센터, 차밭 등을 둘러본 후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쌍계사 인근의 ‘불일폭포’로 향했다.

    쌍계사 입구에서 등산로를 따라 400여m 오르면 신라 성덕왕 21년(722) 삼법화상이 세워 수도한 곳으로 알려진 국사암이 나온다. 이후 110년 만에 진감선사가 다시 중건했다고 한다. 국사암 입구에 네 갈래로 쭉 뻗은 사천왕수가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불일폭포로 향하는 길은 평온했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을 걷다보면 돌계단이 나온다.

    한낮인데도 숲이 우거져 어두컴컴하다. 아담한 오솔길을 홀로 걸으며 사색에 빠질 즈음 널따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환학대’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상향(理想鄕)인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다시 길을 재촉해 불일평전에 이르니 천하대장군이 길손을 맞는다. 불일평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바로 옆 불일폭포 휴게소(봉명산방)에서 목을 축인 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담한 호수와 초가집이 숲과 어우러진 불일휴게소는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이 깊은 산중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을까?’ 의아심이 절로 생겨난다.

    언덕을 돌아서니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 길을 따라 나무다리를 돌아 오르니 만길 절벽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길이 조심스럽다. 산비탈길을 오르내리기를 10여분, 마침내 지리산 유일의 폭포인 ‘불일폭포’가 나타난다.

    장엄한 불일폭포의 신비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물줄기는 하염없이 쏟아져내린다.

    폭포 아래 용소에서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를 살짝 쳐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불일폭포’. 폭포 아래 용추못과 학못이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불일폭포의 아름다운 비경에 심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불일폭포를 뒤로한 채 돌아서는 발걸음이 왠지 아쉽기만 하다. 글·사진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하동고 학생들이 찻잎을 덖은 후 비비기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Tip

    ▲하동 야생차문화축제= 하동군은 21일부터 25일까지 화개면 차 시배지 일원에서 제13회 야생차 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차와 함께! 자연과 함께!’를 주제로 열린 이번 축제는 차 시배지 다례식을 시작으로 5일간 진행된다. 첫날 개막식에서는 김덕수 사물놀이의 ‘천년의 소리, 하동을 울리다’ 한판 공연과 퓨전창작무용예술 ‘2008 하동의 여명’, 윤도현 밴드의 ‘하동! 새로운 천년을 향하여’ 등 다양한 공연이 마련된다. 체험행사로는 내가 만든 왕의 녹차, 천년차 특별시음, 녹차비누·양초만들기, 찻사발 빚기 등 다채로운 가족체험행사와 하동 녹차시장과 농특산물 판매장이 개장된다.

    ▲차 종류-우전·세작·중작·대작= 녹차는 찻잎 따는 시기에 따라 우전·세작·중작·대작으로 나누어진다. 우전은 곡우(4월 20일) 이전에 따서 만든 차로 최고급으로 여겨진다. 세작은 입하(5월 5일) 전후에 새순을 따서 만든 차이며 중작은 5월 중순, 대작은 중하순 무렵에 잎을 따 만든 차를 일컫는다.

    ▲발효에 따른 차의 종류= 불발효차와 반발효, 발효차가 있으며 모든 처리공정 뒤에 일어나는 후발효차가 있다. 녹차는 불발효차, 우롱차는 반발효차, 홍차는 발효차로 분류된다. 후발효차에는 흑차와 홍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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