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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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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신춘문예의 계절에 띄우는 편지 - 박영희 (소설가)

  • 기사입력 : 2008-1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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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보다 더 깊은, 신춘의 계절이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지독히 아파하면서도 이 계절을 은근히 사랑하는 그대! 여전히 밤새워 글 쓰시나요? 11월이 깊어지면 각 신문사마다 신춘문예 공모 기사가 실리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일터로 배달되는 신문의 신춘문예 공모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일전에 제게 한번 읽어 봐 달라고 보내 주셨던 그대의 분신 같은 소설을 읽고도 별다른 얘기를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은 그건 제가 어떻게 해 드릴 말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변명 같지만 저는 아직도 소설가라는 이름표가 낯설고 어색해요. 그러니 작품인들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이나 있겠어요? 하지만 신춘의 계절에 먼저 절절하게 아파본 이로서 적어 보는 고백의 글로 그대의 물음에 조금이나마 답이 되려고 합니다.

    그건 재미나지도 않는 제 얘기이기도 합니다. 제 얘기를 하려니 이것 또한 쑥스럽기는 마찬가지네요. 그래도 그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리라 싶어서 용기를 내어 봅니다. 그대가 지금 자신의 글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듯이 저 또한 제 글이 과연 소설다운 글인가? 하는 의구심을 늘 품는답니다. 또 그대가 말했듯이 왜 내가 이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또한 저도 회한과 의문과 위로의 곡예를 늘 한답니다.

    한 해에 문학을 공부하고 졸업하는 그 많은 예비문학인들이 신춘이나 문예지에 작품을 내겠지요. 물론 문학을 즐기는 분으로 남는 분도 계시겠지만요. 각 신문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의 소설 당선되는 분은 고작 열 명이 조금 넘는 분들이겠네요. 그렇다면 그분들이 당선이 되었다고 모두 작품집을 내고 작품 활동을 할까요? 준비가 잘된 분들은 물론 작품집을 내기도 하지요. 하지는 저는 실력이 많이 모자라서 그동안 써 놓은 작품들을 퇴고도 하고 또 새 작품을 구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대만 아파하는 계절이 아니라 만장 같은 저 낙엽들이 산과 들, 거리를 물들 즈음이면 당선자도 예비당선자들도 그리고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도 모두 다 무병처럼 앓기는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처음부터 소설을 쓰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느 날 내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이야기를 처음엔 왜 이래, 하며 꾸깃꾸깃 그대로 저며 넣었답니다. 제 자신을 믿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었거든요. 도저히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도록 나를 내버려 두어 보겠다는 오기도 사실 있었지요. 그때 제가 쓴 글은 시나 수필이나 소설의 수준이 아니라 그냥 글쓰기였지요. 하지만 나를 믿고 사랑하며 내가 쓰는 글 또한 내가 믿는다면 좋은 작품이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믿음 하나로 몇 년을 보낸 것 같아요.

    누군가 제게 소설이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내가 잘되어 있을 때나 힘들 때에도 늘 곁에 있어 준 친구이며 연인 같은 존재라고요. 정말이지 소설 쓰기는 누구도, 무엇으로도 위안이 되지 못했을 때 나를 위무해준 친구였고 연인이었어요. 누구나 힘든 때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 그대도 많이 힘드시죠? 그 힘듦을 고맙게 껴안고 그대의 서정으로, 묵혀두었던 아픔의 깊이만큼 소설을 그려 내어 보세요. 그려 보라는 말이 그림처럼 들리겠지만 전 그랬다는 것이지요. 그대의 삶의 여정에 소설 쓰기는 아주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소설 쓰는 시간 속에 몰입될 때는 정말 행복하지 않던가요? 자잘한 고민거리들도, 행하지 못했던 약속들도,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들도, 늘 위태한 사랑의 불안도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가 버리잖아요. 그대와 나, 우리가 뭐가 아니 되어도 좋잖아요. 좋아하는 글을 쓰며 같은 고민을 안고 가는 동지가 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저의 이 작은 희망의 연서가 그대에게 잘 도착하리라 믿고, 저 익어가는 가을보다 더 깊은 신춘의 계절에 그대에게 행운이 먼저 도착하리라 소망할게요. 그대의 열정적인 글쓰기에 늘 안녕과 부러움과 건필을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박목월 선생님의 글귀에 얹어 보냅니다.

    … 내가 마음 속에 신(神)을 잃지 않는 한, 혹은 시(詩)를 놓치지 않는 한 / 그래서 나는 창백한 이마에 가로등의 그 쓸쓸한 불빛의 축복을 받으며 / 외롭게 흐뭇한 밤길을 가게 될 것이다. …

    -M으로 시작되는 이름에게 중-

    작가칼럼

    박 영 희 소설가

    경남신문신춘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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