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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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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의 의미는…

사찰 창건 내력 기록한 금판 등 505점 유물 발견
사리 봉안 ‘금제사리호’ 내외함 이중구조 ‘눈길’

  • 기사입력 : 2009-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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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제11호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찰의 창건 내력을 밝혀주는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를 비롯한 사리장엄(舍利莊嚴)이 발견되면서 학계는 물론 문화계와 종교계 등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미륵사는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은 백제의 서동 왕자가 제30대 무왕(武王)에 오른 뒤 창건했다고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지만, 봉안기는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불교계에서 사리와 사리장엄, 그리고 이를 봉안한 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리장엄은 사리(舍利)를 장엄하게 장식하는 행위와 함께 사리 및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용기, 그리고 탑 안으로 들어가는 일체의 공양구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양구를 가리킬 때에는 보다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라 하기도 한다.

    이번에 미륵사지 석탑 사리공(舍利孔)에서 확인된 사리장엄은 193자의 명문이 새겨진 금제사리봉안기와 금제사리호 등 모두 505점에 이르는 유물로 이뤄져 있다.

    사리봉안기는 누가, 언제, 또 무엇 때문에 탑을 세우고 또 사찰을 창건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로, 이번에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金板)에 음각(陰刻)을 한 뒤 주칠(朱漆)하여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이 봉안기는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년)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 연대 등이 드러난 것이다.

    사리를 담은, 금으로 만든(금제·金製) 항아리(호·壺)라는 뜻의 금제사리호는 사리장엄의 핵심으로 사리공 중앙에 모셔져 있었다.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형식이며 보주형(寶柱形) 뚜껑을 덮었는데, X선으로 내부를 투시한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리가 부처의 유골이다 보니 이를 모시는 것도 장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중, 삼중의 겹으로 탑 안에 모시게 된다. 이번 사리장엄도 사리공과 사리호,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리함 등 3중의 구조로 돼 있다. 사리는 곧 부처요, 사리를 봉안한 탑은 부처를 모신 곳이라 할 수 있다.

    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사진설명]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보수 정비를 위해 해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리장엄(왼쪽)과 미륵사지 석탑의 조성내력을 적은 금판인 금제사리봉안기(가운데), 사리장엄의 핵심으로 사리공 중앙에 있던 금제사리호(오른쪽)./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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