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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승첩지와 백의종군로 탐방을 마치고- 김옥병((社)國學院 부설 충무공연구소 연구회장)

  • 기사입력 : 2009-06-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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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사)21세기 이순신연구회 주관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 정신을 체험하고 400여년 전 국혼을 지키고 분연히 가신 그분을 가슴으로 느끼고자 전국의 국학 회원들이 임진란 승첩지 및 백의종군로 역사탐방을 현충일과 일요일에 1박2일로 다녀왔다.

    현충일 아침 전국 각지 회원들이 창원시외버스터미널에 모여 출발했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남해대교가 눈에 들어오자 장영주 국학원 교육원장이 관음포 앞바다 노량에서 조·명·왜 3국 500여 척의 배들이 마지막 혈전을 벌였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효, 충, 도 정신을 느끼자고 제안해 다 함께 묵념을 했다.

    다리를 건너 조금 가자 이락사 입구 큰 바위에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마지막 말씀이 새겨진 유허비가 눈에 들어왔다. 1598년 음력 11월 19일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운명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라는 이락사를 둘러보고 충무공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동영상을 시청했다. 이어 남해대교를 건너 백의종군로를 따라갔는데 1597년 4월 1일 서울에서 출옥하여 경상도 초계의 권율 도원수의 관아로 가고자 아산·공주·삼례·남원과 구례를 거쳐 5월 26일 하동에 도착하여 백의종군의 행로가 시작되었다.

    충무공이 유숙 중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을 받게 되어 1597년 8월 3일 길을 떠난 손경례 집에 도착하니 최정희 해설사가 일행을 맞았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이 고장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600년 된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유일하게 이순신 장군을 기억하는 나무라고 하자 모두 충무공을 느껴 보자며 다투어 안아 보았다.

    저녁에는 의령 자굴산에 자리 잡은 경남사회진흥연수원에서 경상남도 이순신프로젝트 담당 김종임 사무관으로부터 범국가적으로 추진하는 ‘거북선을 찾아라’ 사업 추진 배경과 백의종군로 등 승첩지 대장정 사업과 충무공 리더십 체험프로그램 운영 지원, 이순신 및 임진왜란 바로 알리기 지원, 한·중·일 임진왜란 국제 학술심포지엄 지원 등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아침 일찍 연수원에서의 산책은 의미가 사뭇 달랐다. 장군은 백의종군을 세 번이나 하였다. 장교의 반열에서 세 번이나 군복을 벗었다면, 나라면 군인으로 계속 남아 있었을까.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아니 다른 것은 놔두고 나의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공직생활을 한 나도 참으로 숙연해졌다.

    마지막 견학은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거북선 문화재 모형연구소를 견학하고 모두 수공으로 제작된 다양한 거북선 모형을 보면서 우리 일행도 충무공의 백전백승의 지혜를 느끼자며 거북선 모형을 제작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 진지하게 동참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각자 1박2일 동안 느낀 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순천에서 온 손행순씨는 이번 투어행사가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이 화합하는 장이 되어 참 좋았고 충무공처럼 사심과 공명심을 내려놓고 다 함께 합심단결하여 밝고 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각자 일익을 담당하자고 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김옥병((社)國學院 부설 충무공연구소 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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