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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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330> 한우충동(汗牛充棟)

-책이 많아서 수레에 실으면 소를 땀 흘리게 만들고 집에 쌓으면 마룻대까지 닿는다

  • 기사입력 : 2010-04-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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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책이 생명이다. 문학, 사학, 철학 등 인문과학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소중하다. 농부에게 농토가 없으면 아무리 힘이 좋아도 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학자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해도 책이 없으면 연구를 할 수가 없는 법이다.

    학자들의 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두시언해 초간본 한 책(冊) 값이 서울 시내 단독주택 두 채 값이었는데도, 동국대학교에서 두시(杜詩)를 강의하던 어떤 원로 교수님은 샀다. 왜냐하면 “내가 평생 학생들에게 두시를 가르치면서, 두시언해 초간본 원본을 보지 않고 강의해서 되겠느냐?”라는 심정에서였다. 얼마나 거룩한 사명감인가?

    그러다가 영인(影印) 인쇄가 발달함에 따라서 웬만한 문헌들은 영인되어서 공급이 되고, 또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서 복사를 할 수도 있게 되어 귀중한 문헌의 공유가 이루어졌다.

    요즈음은 컴퓨터, 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라서 많은 자료가 컴퓨터에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다.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문헌의 독점에 의한 횡포도 많이 사라졌다. 그러니 책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하게 되었다.

    한문학이나 고전문학, 사학, 철학 등을 전공한 원로 교수들 가운데는 책을 생명처럼 여기고 많은 돈을 투자하여 훌륭한 장서를 마련한 분이 많다.

    초창기의 학자로 70년대 작고한 양주동, 조윤제, 김상기 같은 학자들의 장서는 이름 있는 각 대학에서 서로 유치하려고 치열한 로비를 할 정도였다. 그러니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에서는 유치할 수 없었다. 이 분들의 장서를 유치한 사립대학에서는 따로 건물 공간을 마련하여 문고(文庫)라는 명패를 걸어 아주 특별 대우를 하였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쯤에는 따로 문고를 설치하지는 않고 기증을 받아서 그냥 다른 책과 섞어서 보관하게 되었다. 책이 옛날만큼 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다.

    점점 각 대학에서 대학 도서관의 책이 늘어나 공간이 좁아지자, 내용이 대단히 좋은 장서가 아니면, 기증도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대학 도서관마다, 실로 묶은 한적(漢籍)은 내용에 상관없이 기증받으려고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양장으로 된 책 가운데는 한적보다 훨씬 귀중한 책이 많은데도 한번 들쳐보지도 않으려 하니, 대학 도서관의 자료수집 자세에 문제가 많다.

    요즈음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 가면, 유명한 퇴직 교수들의 장서가 고서점에 맡겨져 위탁판매되고 있다. 그 자녀들이나 손자들이 볼 적에는 비싼 아파트 공간을 차지하는 먼지투성이의 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가치는 그 교수의 아들도 딸도 모른다.

    별 이름 없는 교수들의 장서는, 그 가족들에 의해서 아예 고물상에 고지(古紙)로 팔려나간다. 그 교수가 세상을 떠난 뒤에 행해지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교수가 살아 있는데도 가족들의 강요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자기 아버지 장례를 치르자마자, 자녀들이 아버지 살던 아파트를 팔기 위해 아버지의 장서를 종이 쓰레기 버리는 곳에 산더미처럼 갖다 버린 경우가 필자가 사는 도시에서 몇 년 전에 있었다.

    한우충동(汗牛充棟)의 장서(藏書)가 학자의 자랑이었는데, 지금은 짐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화수준이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서 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고문헌(古文獻)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 큰 건물을 지어 학자들이 기증하는 장서를 수집하여, 주제별 대형 도서관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지하철 몇km 건설하는 돈만 하면, 이런 도서관을 수십 개씩 지을 수 있다. 책을 천대하는 민족이 문화민족이 될 수가 있겠는가?

    *汗: 땀 한. *牛: 소 우. *充: 채울 충. *棟: 마룻대 동.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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