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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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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산나물 들나물- 이영득(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0-04-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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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봄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한마디로 4월인지 2월인지 모르겠다. 3월 내내 비 오고, 눈 오고 날씨가 궂더니, 4월 중순을 넘어섰는데도 봄볕 쬐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산과 들에 필 꽃은 다 핀다. 새잎도 돋는다. 봄나물을 캐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쑥을 뜯고, 회잎나무 순을 따고…. 시장에 가면 봄나물을 쉽게 살 수 있지만, 자연 기운 듬뿍 받은 산나물, 들나물을 먹고 싶기 때문일 게다.

    이틀 전에 동무랑 산에 갔다. 맑은 공기 마시며 화사한 복숭아꽃도 보고, 뾰족뾰족 새잎 난 나무도 올려다봤다. 그러다 내 키만한 회잎나무에서 야들야들한 잎을 땄다. 이 가지에서 한 잎, 저 가지에서 한 잎. 그렇게 나물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다.

    “그거 무슨 나물이에요? 먹는 거 맞아요?”

    “네, 회잎나물인데 데쳐서 무쳐 먹으면 고춧잎 비슷한 맛이 나요. 나물밥을 해도 맛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몇 잎을 더 땄다.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동무가 물었다.

    “야, 너 요새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나물 한 줌 해도,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나물하거나 싹쓸이를 할까 봐 사람들 앞에서는 풀잎 하나 뜯지 않았잖아?”

    그래서 빙긋이 웃었다.

    예전에야 봄이면 부모님이나 동네 사람들과 나물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물도 익히고, 맛도 익히고, 나물 하는 법도 배웠다. 그러면서 자연에 대한 예의도 저절로 몸으로 익혔다. 배우려고 배운 게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나물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아는 사람도 몸에 좋다는 것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임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산에도 다 주인이 있고, 국립공원이나 자연보호 구역에서는 식물 채취가 금지되어 있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이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가서 싹쓸이 하는 것은 자연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동무가 이런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사람들한테 ‘나물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몸으로 보여 준 거지? 가시나.”

    이러면서 대답도 듣지 않고 활짝 웃는다.

    우리는 나물을 조금 더 하면서도 한 듯 만 듯 흔적이 나지 않게 했다. 자연의 가치를 알아주고 이용할 줄 알고, 자연이 나누어 준 선물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안다.

    나물 한 줌이라도 해 본 사람이 자연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고, 욕심 부리지 않는 참마음도 생긴다.

    산나물이나 약초를 싹쓸이 하거나 멧돼지가 산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처럼 하면 나무나 풀은 다 안다. 욕심 부릴 때 이미 자연의 기운을 거두었을 게 분명하다. 사람도 너무 욕심을 부리면 주고 싶던 마음도 거두게 되지 않던가.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를 내면서 쓴 ‘산나물’이란 글이다.

    철 따라 고운 꽃 피면/ 저걸 어찌 나물 해 먹나 싶기도 하다.//그런데 먹어야 사는 목숨으로 태어났으니 어쩌랴?// 푸성귀 한 접시 밥상에 올려야 한다면/ 약치고 비료 뿌려 키운 것보다/ 하우스에서 갑갑하게 자란 것보다/ 흙도 없이 물만 먹여 키운 수경재배 푸성귀보다/ 자연이 키운 걸 올리고 싶다./ 온전한 걸 올리고 싶다.// 얼룩덜룩 얼레지 세 잎, 윤기 자르르 참나물 한 줌/ 향이 좋은 참취 한 접시, 달래 넣은 된장찌개// 산바람이 키워 준 산나물 먹고 있으면/ 산한테도 고맙고, 해한테도 고맙고, 흙 바람한테도 고맙다./ 비, 골짝 물, 이슬, 안개…… 다 고맙다./ 고마워서, 고마워서 지켜주고 싶다.

    이영득(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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