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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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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술에 반하다 ⑤ 남해 유자주

‘보물섬’에서 찾아낸 상큼·향긋·달콤한 ‘술맛’

  • 기사입력 : 2010-07-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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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유자주 류은화(왼쪽) 대표와 아들 강시진씨가 말린 유자를 손보고 있다./전강용기자/


    처리된 유자액이 여과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노란 색깔에 눈이 가는 유자는 겉모양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속에는 새콤하고 톡 쏘는, 탱탱한 과육이 숨어 있다. 코끝에 전해지는 향기 또한 어느 향수 못지않게 향기롭다. 치자, 비자와 함께 남해 3자라 불리는 남해 유자는 맛과 향이 진하고 당도가 높다. 비타민C가 레몬보다 3배 많고 구연산을 4% 이상 포함하며 헤스페레틴 성분으로 혈관을 튼튼하게 한다. 남해 유자로 만들어진 유자주는 피부 노화를 막아 주고 피로 회복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유자는 언제 어떻게 남해에 왔을까. 옛 문헌에 따르면 신라 문성왕 2년인 840년 장보고가 당나라의 상인 집에서 유자를 선물로 얻어 오다 풍랑을 만나 남해에 안착했을 때 도포자락 안에 있던 유자가 깨지면서 씨앗이 남해에 전파됐다고 한다.

    보통 집에서 과실주를 손쉽게 담그는 방법은 과일을 옹기 같은 용기에 넣고 과실주용 독한 소주를 부어 한동안 과일의 향미가 소주에 배어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모 포털 사이트에서 ‘남해 유자주’를 검색해 보았더니, 남해산 생유자를 6~7등분해 소주를 붓고 3개월간 숙성시키는 것이라고 나와 있어 깜짝 놀랐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전통주’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머쓱해지는 제조법이다.

    우리가 만나 볼 유자주는 이름만 유자주가 아니라 ‘초록 보물섬’이라고 불리는 남해가 자랑하는 대표 특산물 유자와 국내산 쌀을 숙성시켜 제대로 만든 전통주다.

    겨울철에 나는 유자로 어떻게 초여름에 술을 담글 수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도 ‘유자’ 하면 떠오르는 시큼한 향미가 침부터 꼴깍 넘어가게 한다.

    녹음이 뜨거운 햇살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선 날, 과연 유자주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맛을 낼지 호기심을 잔뜩 안고 남해 고현면 오곡리로 향했다.

    오곡리에 들어서니 남해 대표 특산물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남해 유자주’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은 작업장이 눈에 들어온다. 마침 찾아간 날은 처리 작업을 마친 유자를 거르고 있다.

    주조장 안에서는 남해 유자주 류은화(49·여) 대표와 아들 강시진(24)씨가 방문객에 신경 쓸 틈도 없이 바쁘게 작업 중이다.

    남해 유자주를 맛보러 왔다고 하니, 류씨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작업장 옆에 있는 저온창고로 안내한다. 저온창고 내부를 보니 사시사철 유자주를 생산해 내는 비밀을 알 수 있다. 창고 벽면에는 채 썰어진 유자 껍질 봉지가 겹겹이 쌓여 있다.

    류씨는 “유자는 수분을 매우 많이 머금고 있어서 껍질 1t을 말리면 200kg 남짓 남아요. 유자를 보관해두고 계절에 상관없이 유자주를 만들기 위해서 유자철이 되면 생과 30~40t을 미리 구입해서 채 썰어 말린 형태로 보관을 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병입 작업을 하는 공간에 놓여 있는 특별한 기계에 눈이 간다. 주조실에서 물을 사용할 때마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이 기계는 바로 ‘오존 살균 정수 장치’다.

    산화력을 가진 오존 가스를 물에 용해시켜서 고농도의 오존수를 공급하는 것인데, 바로 오존으로 살균된 물을 술 담그는데사용하는 것이다. 술을 담그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물맛이 중요하다 보니, 물맛을 개선하고 청결을 유지시켜 주는 이 장치를 들여놓게 됐다고 한다.

    쌀과 유자를 자연 발효시켜 만드는 유자주를 만드는 첫걸음은 밑술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고두밥을 쪄내고 고두밥에 누룩을 섞어 물에 담가 3일을 둔다. 쌀과 물을 더 넣은 후 당 성분을 가진 재료를 첨가하면 그때부터는 밑술이 스스로 발효되기 시작한다.

    “밑술의 온도가 30℃ 넘으면 감패가 옵니다. 1~3단 사입 과정에서 우리 집의 비밀이 있는데 그건 비밀이고요. 당분이 들어가 스스로 발효가 시작되면 마치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답니다.”

    26~27℃에 맞춰진 술통 속에는 밥알이 마치 수영이라도 하듯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술 냄새 때문에 초파리가 날아오기 쉬운데 항상 청결을 유지해야 술맛도 유지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숙성실 안에는 향균 효과를 위해 향을 피우고 있다.

    술이 완성되면 여과기에 넣어 찌꺼기를 말끔히 걸러낸 후 유자를 넣는다.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말린 유자 껍질을 꺼내 유자 특유의 쓴맛을 제거하기 위한 처리 작업을 한다. 말린 유자 껍질을 한 입 베어 먹어 보니 바삭바삭함과 농축된 향긋함이 입안에 퍼졌다.

    류씨와 시진씨가 익숙한 듯 말린 유자를 맛봐 가면서 작업을 한다.

    “우리가 쓰는 유기농 유자는 천연 비타민C와 다름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그냥 먹어도 탈이 없죠.”

    특수 처리한 유자를 건져내 여과하면 향긋하고 반투명한 유자액이 흘러나온다. 향긋함에 취해 한입 찍어 맛보니 부드러운 유자주스와 비슷하다. 이렇게 처리된 유자액은 유자주 중 20%가량을 차지한다. 유자액과 미리 만들어 놓은 술을 잘 섞어 1℃~-1℃ 사이에서 15일간 저온 숙성시킨 후 살균해 병에 담으면 유자주가 완성된다.

    전통발효방법으로 숙성완료된 유자주는 알코올 함유량에 따라 15% ‘첫서리 프리미엄’과 9% ‘첫서리 라이트’로 나뉜다. 남해의 농·축협을 찾으면 1병당 각각 1만원, 7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첫서리’라는 이름은 류씨 부부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유자는 첫서리를 맞은 것이 가장 달고 맛이 좋다 해서 이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요새는 소주도 도수가 낮은 게 인기잖아요. 유자주도 민속주 허가를 15%로 받았는데, 지금은 라이트 제품이 더 인기가 있어요.”

    어떻게 유자주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류씨 부부는 남해 해성중학교 선후배 사이다. 각각 직장생활을 하던 두 사람은 결혼 후 1991년 돌연 귀향길에 올랐다. 고향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단다. 남해 특산물 소비를 촉진시키는 방법을 찾던 중 유자주를 만들어 왔던 류씨의 아버지가 유자주를 만들어 볼 것을 권유했다고.

    무조건 남해산 유자, 국내산 쌀을 이용하는 고집과 술맛을 아는 아들의 입맛은 이들이 만드는 남해 유자주 맛의 또 다른 비밀이다.

    류은화 대표가 저온창고에서 숙성탱크를 살펴보고 있다.

    “유자는 남해에서 나는 것만 써야 이 맛이 나요. 국산 쌀만 쓰고요. 편법 없이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 하다 보니 손해도 보긴 했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맛을 내기 위한 고집이죠. 그리고 아들이 술맛을 곧잘 아는데, 다른 술에는 알르레기 반응이 있어도 깨끗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 유자주를 마시고는 아무 탈이 없더라고요.”

    드디어 유자주를 맛보는 시간. 상큼, 향긋, 달콤한 맛이 적절히 어우러진 유자주는 특히 마지막에 단맛이 깊게 남는다. 첫서리 프리미엄은 15%의 주도 때문에 단맛이 다소 강한 느낌이 들지만 라이트는 이름 그대로 순하다. 유자차 말고도 유자를 즐길 수 있는 멋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농림부 신지식인 231호로 등록되어 있는 류씨는 유자주뿐 아니라 마늘 막걸리를 개발해 일본으로 수출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전통과 정성이 곁들여진 남해 유자주는 제1회 대한민국주류품평회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국세청이 선정하는 6대 명품주에도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내년이면 유자주 만든 지 20년째예요. 전통주 명인이 되어야죠!”

    류씨는 백혈병을 이겨낸 든든한 아들이 유자주의 명맥을 잇기 위해 일손을 돕고 공부도 함께 하고 있다며 흐뭇해했다.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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