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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술에 반하다 ⑦ 진주 도라지약주 ‘진주(珍酒)’

21년근 도라지의 그윽한 향 감도는 보배주

  • 기사입력 : 2010-08-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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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일 도정한 쌀로 고두밥을 지어 입국제조를 하고 있다./장생도라지 제공/

    주조 담당 정정일 과장과 이미경 대리가 살균 중인 도라지약주를 지켜보고 있다.

    도라지는 초롱꽃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도랏’이라는 이름이 도라지로 불리게 됐으며 도래, 돌가지, 도레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대개 도라지의 수명은 3~4년인데 그 이상 자란 것이 드물게 발견되기도 하며 이런 도라지는 특별한 약효를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12년 된 도라지는 산삼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21년이나 묵은 도라지의 내공이야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오늘 맛볼 전통주는 21년근 도라지와 당일 도정한 쌀로 만든 약주 ‘진주(珍酒)’다.

    진주(珍酒)는 도라지로 전국에 이름난 장생도라지에서 빚어내는 술이다. 보통 3년 정도마다 땅을 옮겨가며 자연상태에서 수명을 늘린 도라지와 신선한 국내산 쌀을 첨단 기계 설비를 이용해 가공했다.

    도라지로 만든 건강식품을 연구·가공·생산하는 이곳에서 약주를 빚어낸 것은 지난 2007년부터다. 술을 좋아하지 않고 만들 줄도 몰랐던 이성호 사장이 돌연 진주를 빚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보니 애향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2002년 도지사가 “충절과 교육의 도시 진주는 문화, 예술 어느 것도 빠질 것이 없는 도시인데 대표할 만한 술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며 “진주를 알릴 만한 술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 사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오직 도라지에 대한 생각뿐, 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임도 없이 못한다고 거절했어요. 그러니까 얼마 후 재차 권유를 하시더라구요. 술을 만들면 업체의 쌀 소비량이 늘어나고 쌀 시장을 비롯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서 고을마다 술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덧붙이시더라고요. 그제서야 ‘이거 한 번 해봐야겠구나’하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듬해 바로 도라지주 연구를 시작했다. 3년을 투자해 술을 완성했다.

    이름도 거창하게 지었다. 기운이 하늘까지 솟은 술, ‘기천주(氣天酒)’. 야심차게 시음회를 준비했다. 그런데 도라지주가 공개되자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술에 대한 반응은 좋지 못했다. 7~8억원이나 투자된 회심의 작품이었는데 악평을 받고 보니 난감했다.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전열을 가다듬었고 무학주조 기술팀의 도움을 받아 분석에 나섰다. 그 당시 도라지주는 40도가 넘는 리큐르주였는데 너무 독한데다 강한 도라지 향까지 더해지니 체감 주도가 50~60도는 되는 것처럼 느껴져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었다. 의견을 수렴한 후 주도를 확 낮춘 약주로 방향을 바꿨다. 전국 공모를 통해 선정했던 술의 이름도 과감히 포기하고 개명했다. 1년여간 추가 연구 끝에 ‘진주’가 탄생했다.

    장생도라지의 보배로운 술이라는 뜻과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되겠다는 뜻을 동시에 가진 ‘진주’는 2006년 3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술은 기호 식품이기 때문에 새롭게 시장에 나온 술이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가 결코 쉽지 않았어요. 소주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입맛을 바꾸는 것이 가장 힘들었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무조건 맛보게 해주는 홍보였다. 도라지 약주 ‘진주’를 맛보고 싶다는 곳 어디든,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수익 창출에도 걸림돌일 뿐 아니라 정성으로 빚은 도라지 약주가 너무 쉽게 보이는 것 같아 전략을 수정했다. 철저히 소비자의 입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 ‘진주’는 연간 30만병 정도 생산, 7~8억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국세청이 주관한 제1회 대한민국 주류 품평회서 입선했고, 혁신도시 기공식과 람사르총회 때 공식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생도라지 전체로 보면 진주는 7~8% 정도 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이성호 사장과 직원들은 ‘진주’를 보배 다루듯 한다.

    ‘진주’를 만들 때 반드시 지켜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당일 도정한 쌀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저온저장소에서 5℃ 미만으로 보관된 쌀을 약주를 담는 날 아침 도정해서 쓰고 있다고. 쌀의 신선도가 술맛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당일 도정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쌀과 찹쌀을 70~75%까지 정백하는데, 현미의 겉에 함유되어 있는 지방과 단백질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지방과 단백질은 술의 색과 향미를 떨어뜨리고 두통 유발물질 생성에 관여한다고 알려준다.

    이 사장은 “약주도 새 쌀로 만들면 고소하고 맛있어요. 지역을 대표하고 사랑받는 약주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품질로 승부해야 하는데, 품질을 위해 당일 도정 법칙은 꼭 지킵니다. 판매량이 늘어서 술을 못 만드는 일이 있어도 이 방법은 고수할 겁니다”라고 강한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21년근 도라지가 들어간 약주 제조 과정을 구경하기 위해 주조실로 향했다. 모든 과정은 기계화된 데다 시스템화되어 있어서 섬세한 온도 조절과 정밀 여과를 거쳐 술맛을 더욱 좋게 한다.

    우선 당일 도정한 국산 쌀을 씻어서 고두밥을 찐다. 종국을 넣어 입국을 만든다. 다음은 밑술을 제조할 순서다. 입국미와 종균배양균에 물을 더해 밑술을 담근다. 밑술은 19℃로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킨다. 밑술의 온도가 낮은 이유는 술을 만드는 제조 환경 때문이란다. 게다가 온도가 낮을수록 술맛은 깊어진다.

    밑술에 입국과 누룩, 정제된 물을 더하면 1단 담금이 된다. 여기에 21년근 장생도라지를 첨가하면 2단 담금이다. 21년근 도라지를 그대로 넣었더니 도라지 성분이 술에 빠져 나오는 시간과 양의 문제가 있어 도라지 자체를 넣지 않고 농축한 엑기스를 넣는다. 3단 담금에는 찹쌀과 물을 더한다.

    3단까지 전 담금과정 후 꺼내는 것을 ‘출국’한다고 한다. 이 과정까지 약 2주가 소요된다.

    이후에는 ‘필터 프레스’라는 여과기를 이용해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해 1차 여과하고 이어 옆에 있는 살균기에서 85℃로 고온 순간살균해 유해균의 증식을 막는다. 그후 후숙기간을 가진다. 후숙은 여과기에서 걸러지지 않은 미세입자를 가라앉혀 앙금을 빼내는 작업이다. 원액을 저온 숙성시켜 빛깔과 향미를 좋게 만드는 단계이기도 하다.

    21년근 장생도라지.

    2단 담금 과정에서 도라지 엑기스를 넣고 있다.

    후숙을 마치면 2차 정밀여과를 한다. 규모가 작고 거름 능력이 뛰어난 정밀 여과기를 이용해 술을 걸러내면 맑은 술이 나온다. 계속해서 2차 살균처리한다.

    다음은 저장탱크에 넣어 6℃에서 두 달가량 숙성시킨다. 원주가 저장탱크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정밀한 온도관리가 관건이다.

    주조실 2층에는 18t 저온탱크가 두 개나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는 약주의 주지 유지를 위해 탱크를 번갈아가며 사용하기 때문이다. 약주는 다른 약주와 조금이라도 섞이면 맛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 탱크에서 완전히 약주를 뽑아낸 후 세척, 건조 후 다시 사용한다.

    이 모든 작업이 끝나면 포장단계인 병입 작업이 시작된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열교환기’라는 기계다. 찬 술을 데웠다가 다시 차갑게 만드는 이 기계는 병입 전 술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금방 병입되지 않을 경우, 65℃도 데워진 약주가 그대로 유지되면 술맛이 변해버리기 때문에 병입을 대기 중인 약주를 저온탱크에 있을 때와 같이 차갑게 만들어 병입 직전에 뜨겁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술은 13%의 알코올을 포함한 ‘진주’와 16%의 알코올이 든 ‘진주 프리미엄’으로 나뉜다. 소매가는 7000~8000원이다.

    과연 21년 묵은 도라지의 기운이 들어있는 진주의 맛은 어떨까.

    맑고 연한 황색 빛깔을 띠는 진주에서는 독한 도라지 향을 맡을 수는 없다. 대신 숙성된 약주의 향이 먼저 코끝에 닿는다. 몸에 좋은 도라지의 성분과 저온 숙성 덕분에 목 넘김은 부드럽고 넘김 후에는 잔향이 은은하게 남는다. 21년근 도라지가 들어있는 만큼 건강을 생각하는 술자리에 그만일듯 싶다.

    “술은 잘 만들어 빨리 먹는 것이 좋습니다. 진주지역 소매점 70~80%에서 우리 진주를 취급하고 있어요. 우리 지역민들에게 이 정도 사랑 받으면 이미 절반의 성공 아니겠습니까.”

    제대로 만들어 품질로 승부하고 진주에서 가장 사랑받는 술이 되고 싶다는 ‘진주’. ‘진주’ 수익금의 3%는 농업장학사업에 기증된다. 진주를 위한 ‘진주’의 향이 그윽하게 퍼져온다.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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