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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문경새재 길- 김명철(창원시 대방동 우체국장)

  • 기사입력 : 2010-09-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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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님 부름받아 새재를 넘자니 봉우리 꼭대기에 겨울빛이 차갑구나.

    벼슬길로 돌아가는 부끄러운 이 마음

    개울 바닥 뒹구는 마른 잎 같아라.

    대궐 안에 아부꾼들 멀어지면

    조정엔 오가는 말 화락하리라.

    근심과 걱정으로 십년을 보냈건만

    날뛰는 금수무리 잡아내지 못하였네.”

    문경새재 조령관 옆 화강암에 새겨져 있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새재를 지나는 길’이란 제목의 시다.

    저 유명한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것이 화근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선생은 부관참시를 당하는 화(禍)를 입었으니 세종 13년(1431년)에서 성종 23년(1492년)까지 급변스러운 세상을 살다가신 선생이 당시 궁궐의 혼란한 실상을 이 시에다 적고 있다. 궁궐을 뒤로하고 경상도 땅으로 오는 도중 문경새재 산마루에 올라 한양을 뒤 돌아보며 지었으리라 생각하니 쓸쓸하고 처량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경상북도 문경과 충청북도 괴산을 잇는 산길인 문경새재는 주흘산과 조령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으며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영남지역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갈 때 반드시 넘었던 길이지만 험준한 산세로 인해 한걸음에 넘지 못하고 쉬어가는 곳이었기에, 많은 시인과 묵객들의 아름다운 시들이 구절구절 길섶 화강암에 새겨져 오가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지금의 길은 숙종 때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을 쌓고 성문을 세우면서 만들었으며 성문에 제1관문은 주흘관, 제2관문은 조곡관, 제3관문은 조령관이라 이름을 붙였다.

    주흘관에서 조령관까지 약 6.5km의 비포장도로는 아름드리 춘양목과 울창한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으며 조령천의 옥같은 계류가 흐르고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엔 이만한 곳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여름휴가를 맞아 문경새재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흙길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천연기념물 길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요즘처럼 차량만능 시대에 포장되지 않은 옛길이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당장의 편리함보다는 세상일을 한 발짝 멀리 내다볼 수 있었던 옛 어른들의 선견지명에 새삼 감사할 따름이다. 고집스럽게 옛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이 아름다운 길을 맨발로 걸어보는 행운을 누리는 것 아닌가.

    바야흐로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시를 합친 통합창원시가 탄생하였다. 우리 창원지역은 도시 도로망이 잘 설계되어 쭉쭉 뻗은 아스팔트 도로는 전국 제일이다. 옛날의 사람이 다니던 신작로, 하천길, 들길, 마을길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널따란 대로가 자리 잡았다. 손잡고 도란도란 거닐던 추억의 흙길들이 속도를 위한 도로, 차량을 위한 도로에 모두 잠식되고 만 것이다.

    문경새재의 옛길을 걸으면서 우리 창원시에도 흙길 하나쯤 조성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산구 성주동 유니온 빌리지에서 김해시 장유면을 넘어가는 상점령까지의 약 3.9km 산길을 부드러운 흙길로 만들었으면 하고 제안한다. 주변의 삼림이 상당히 울창하고 대암산, 용제봉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존의 길에 약간의 손질을 하고 흙을 채운다면 많은 시민이 찾는 아름다운 숲길이 될 것이다.

    이제 차량을 위한 길이 아닌, 사람을 위한 길을 하나 만들어보자. 차량에 의지하여 무작정 달리는 길이 아닌, 맑은 공기와 함께 천천히 생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진정한 길이 아니겠는가.

    김명철(창원시 대방동 우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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