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1일 (수)
전체메뉴

[사람의 향기] 유기농 배 재배 양기형씨

“농부의 양심 걸고 ‘자연 그대로의 배’ 만들 겁니다”

  • 기사입력 : 2010-12-13 00:00:00
  •   

  • 양기형씨가 저온창고에서 수확한 유기농 배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여러 가지 과일 중에 배는 귀신이 먹는 과일입니다. 제사상에 쓸 때만 구입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왜 제가 배 농사를 짓느냐고요? 그것도 남들이 다 욕하는 유기농을 고집하냐고요? 단지 제가 어릴 때부터 배를 좋아했고, 유기농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해야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노하우를 먼저 터득해서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두산마을 농사꾼 양기형(52)씨는 유기농 배에 인생을 건 '고집불통'이다. 동네사람들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기농 배를 기르겠다고 홀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지 5년. 양씨는 올해 경남·부산·울산에서 최고의 '명품 과일'을 수확했다.

    지난달 12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이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2010 경남 인증농산물 명품대회'에서 영예의 대상(大賞)이라는 결실을 거둔 것.

    그러나 양씨는 이같은 상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기농 배를 재배하는 것은 아직도 산 넘어 산이다. 상을 받았다고 당장 판로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양씨는 가족이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답이 없는 유기농 배 재배에 '최선의 정답'을 찾아내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도시 직장생활 접고 뛰어든 배 농사

    두산마을이 고향인 양씨는 원래 농사꾼이 아니다. 부산의 한 회사에서 월급받고 생활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가 갑자기 고향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은 홀로 계신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아내에게 이해를 구하고 12년 전 그렇게 귀농했다. 문제는 무슨 농사를 짓느냐다. 당시 함양에서는 특별히 이름 난 농산품은 없었고, 배울 만한 돈 되는 농사 방법도 없었다.

    무턱대고 결정한 게 배였다. 양씨는 그 이유로 어릴 때부터 배를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양씨는 고향집 뒤편 백암산 산자락 1만여㎡(3000여평)을 아내와 함께 밭으로 일궜다. 그리고 진주에서 배나무를 사와 심었다. 함양에서 배 농사를 한다는 것은 드물었고 쉽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수확이 많았다. 각종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려 재배했기 때문에 상품으로 내는 데는 문제될 게 없었다.

    교과서도 정답도 없는 유기농

    양씨가 친환경농법에 첫 도전을 시작한 것은 배 농사 5년째 접어들면서였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재배방식에서 농약을 뿌리지 않는 무농약 방식으로 한번 재배해 보고 싶었다. 무농약은 유기농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단계다.

    당장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 병해충이 생겨 손발이 더 바쁠 수밖에 없었다. 벌레가 먹어 떨어지는 배도 늘었다. 그러나 화학비료로 충분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어 나무와 과일들이 스스로 내성을 만들어갔다.

    양씨는 무농약 농사 3년 만인 지난 2005년 12월 농림부, 농협중앙회, 환경부가 주최한 제7회 전국친환경농산물 품평회에서 대상에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양씨는 이듬해 두 번째 도전을 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 배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30~40년 전 농산물들은 사실 다 유기농이었어요. 왜 지금은 유기농을 할 수 없을까 생각을 했죠. 물론 옛날에는 수확량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겠죠. 좀 더 적게 먹고 완전한 자연 그대로의 배를 만들어보고 싶었죠.”

    막상 유기농을 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쌀 등 일부 농산물에서 유기농을 한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유기농 배는 생소한 분야였다. 무엇보다 유기농 배를 먼저 시작한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수확률을 높일 수 있을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미개척 분야와 마찬가지였다. 한번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유기농 배를 재배한 첫해 양씨는 완전히 실패했다. 벌레가 먹고 날씨 탓에 낙과가 발생하는 등 그야말로 수확할 만한 배가 없었다.

    양씨는 1차 실패를 토대로 농약을 뿌리지 않고 병해충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해 다음 해에 또다시 시도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수확은 없었다.

    “두 번 실패를 하고 비용도 많이 날렸어요. 그만두고 싶었죠. 자꾸 나무며 배며 병이 드는데 농업관련 연구소도 담당 공무원들도 관심이 없었죠. 물어 볼 데가 전혀 없었어요. 타 지역 유기농 배 농부들이 쓰는 방법도 해봤지만 지역이 달라 효과도 없었어요. 교과서도 정답도 없는 분야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그러나 포기하고 싶었던 이유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됐다. 지금껏 알려진 유기농 배 재배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 양씨의 고집에 불을 지핀 것.

    “연속 실패로 솔직히 유기농 배로 돈벌이 하겠다는 생각은 버렸어요. 문제는 유기농 배는 언제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라 생각이 들었죠. 포기할 수 없었죠. 먼저 하는 사람은 꼭 손해를 보겠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먼저 방법을 터득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죠.”


    양기형씨가 함양군 백암산 아래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벌레도 먹고살고 나도 먹고살고

    양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전국에 몇몇 안 되는 유기농 배를 한다는 농가 곳곳을 찾아다녔다. 이런 저런 방법을 모아 유황, 황토, 은행, 쑥 등을 활용해 농약을 대신할 만한 방제약을 만들어 세 번째 농사를 지었다. 큰 효과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병해충을 없애 주었다. 양은 적지만 첫 수확이 생긴 것이다.

    지금 양씨는 농약과 화학비료 재배 등 일반농사의 50%만 건진다는 생각이다. 욕심을 버렸다.

    “유기농 배를 하려면 차라리 반만 수확하고 손해본다는 생각 없이 마음 편하게 해야 되겠더라고요. 반은 벌레가 먹고살고, 반은 내가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이죠. 하하~”

    이런 탓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고집통이, 꼴통, 외골수, 좌파 등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듣는다. 약 치면 수익성이 좋은데 뭐가 그리 잘나서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느냐고…. 속사정도 모르고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할 때면 안타깝다. 3년 전부터 유기농 배 수확이 점점 늘어나지만 아직까지 판매는 많지 않다. 홍보가 안돼 판로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유기농 배를 한다고 하면 솔직히 말리고 싶어요. 재배 비용도 일반 농사보다 2배 많이 들어가는데 가격이 비싸니까 잘 팔리지도 않아 답답하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죠.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농약 치면 우리 식구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을 이해해 준 아내가 항상 고맙죠.”

    양씨는 자신의 유기농 배 농사 방법이 정답에 60% 정도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5년째 접어들면서 배나무들도 스스로 살아야겠다는 내성이 생겨났다. 지금은 자연식으로 만든 방제약을 언제, 얼마의 양을 뿌려야 하는지 영농일지에 꼬박꼬박 적어 가며 연구하고 있다.

    “유기농은 농부의 양심”

    양씨는 유기농 철학(?)도 생겨났다. 한마디로 ‘농부의 양심’이란다. 국내에서 유기농 인증 농산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인증서는 아무 필요없는 것이라고. 그보다 중요한 게 편법을 쓰지 않고 진실되게 농사를 짓는 양심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고 너도나도 자랑하고 있는데 그게 진짜 유기농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다른 지역에 두 농가가 있었어요. 한 곳은 유기농을 하고, 한 곳은 농약을 뿌리더라고요. 농약은 바람 또는 빗물을 타고 200m까지 옮겨가는데 바로 옆 유기농 농가가 농약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농가들이 유기농 인증을 받더라구요. 유기농 인증 기준에 문제가 많은 거죠.”

    그래서 양씨는 이번 명품대회에서 받은 대상(大賞)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의 양심을 걸고 맛 좋고 안전한 유기농 배를 다양한 소비층에 공급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묵묵히 홀로 걸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알아주리라 믿는다.

    “유기농을 하다 보면 갈등도 많아요. 나무에 벌레가 있는데 농약 조금만 뿌리면 안 될까 하는 유혹은 누구에게나 자주 찾아오거든요. 조금 뿌린다고 표 나는 것도 아니고. 그때마다 이겨내야 돼요. 순간 조금이라도 농부가 양심을 저버리면 다 물거품되는 거예요. 정답이 없는 유기농은 전적으로 농부의 양심에 달렸다고 봐요.”

    유기농 배를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양씨. 그의 농장은 그의 양심을 키워 가는 농장이었다.

    글= 김호철기자 keeper@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호철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