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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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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3대째 진주곡자 가업 이진형씨

“세상 변해도 전통누룩 빚는 맥 이어가렵니다”

  • 기사입력 : 2010-1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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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곡자공업연구소 발효실에서 이진형씨가 누룩을 들어보이고 있다./성민건기자/

    전통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는 고집이 필요하다. 세태의 변화에 순응해 새로운 방식을 찾다보면 전통의 맥은 사라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곡자, 즉 누룩은 곡물, 흔히 밀을 분쇄해 미생물을 번식시켜 건조시킨 것으로 술 제조에 쓰이는 발효제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 막걸리가 누룩으로 제조되는데, 사실 현재 대부분의 막걸리는 일본식 누룩으로 제조되고 있다.

    일제시대 때 일제수탈의 일환으로 주세법을 제정하고 전국 양조장을 통합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 전통 고유의 막걸리 발효방법에 일본 사케식 발효방법을 가미시켜 교잡종 같은 효모균이 탄생되었고 이 효모균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막걸리 제조에 쓰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통 곡자를 가업으로 전래, 유지하는 3개 가문이 있으니 전라도 광주 송학곡자와 경상도 북부지역의 상주곡자, 그리고 남부지역의 진주곡자가 내려오고 있다. 각각 곡자의 맛과 향은 고유한데 이 중에서 진주곡자는 3곳에서 규모가 가장 커 전통 방식의 곡자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진주곡자를 유일하게 계승하고 있는 진주곡자공업연구소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이진형(39)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릴 때부터 누룩과 더불어 살았죠.”

    지난 22일 오전 11시께 진주시 상평동의 진주곡자 공장에서 만난 이기형씨는 누룩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곡실로 안내했다. 곡실은 누룩을 발효시키는 방으로 제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이씨는 공기를 가리키며 “공기 중에 있는 누룩균들이 이 통밀을 먹고 싸며 발효시킨다. 이 녀석들이 진주곡자의 맛을 내는 놈들이다”고 설명했다.

    전통제조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했다. 통밀을 원형 형태로 교반시켜 만든 후, 곡실에 1주일가량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난 누룩을 분쇄기에 넣어 가루 형태로 만드는 것이 전부이다. 전통제조방법의 비법은 곡실의 누룩균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발효를 위해 누룩균들이 잘 배양할 수 있도록 곡실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이곳 누룩균들의 역사는 정확히 얼마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공장을 이전하면서도 곡실의 공간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지난 1974년께 이씨의 외할아버지가 곡자조합을 인수하면서 진주곡자 공장을 이씨의 아버지 이원휘(70)씨에게 물려주었다. 당시 진주시 계동에 위치한 공장은 지난 1986년 현재의 상평동으로 이전했다. 어릴적부터 누룩과 함께 살아왔던 이씨는 어린 마음에 ‘언젠가 곡자공장을 물려받아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고 한다.

    호주로 유학 가 마케팅을 전공한 그는 지난 2002년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일을 도왔다.

    그는 “당시 아버지 곁에 일을 도와줄 이가 없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공장 일을 도와야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버지 이원휘씨는 현재 서울에 거주 중으로 곡자공장은 이씨가 본격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

    이씨가 아버지 일을 도울 당시만 해도 한 달에 보름도 공장운영이 힘들었다. 90년대 중반부터 막걸리 등 전통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사양산업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전통제조 곡자를 산업으로만 인식했다면 공장운영을 그만뒀을 것이다”며 “아버지 업을 이어 전통제조방식 곡자의 명맥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곡자를 대량생산하다 보니 전통주 시장과 곡자 생산량은 비례할 수밖에 없다.

    한때 수요가 많아 생산량이 활발할 때는 직원이 30명을 넘었지만 현재는 총 직원이 9명이다.

    최근 비행기 기내식에도 막걸리가 제공되는 등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그나마 최근 들어 또다시 곡자 생산량은 늘고 있다. 하지만 일본식 누룩에 밀려 전통누룩으로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 거의 없다 보니 용인 민속촌 등 일부를 제외하고 진주곡자 대부분은 조미료로 쓰이고 있다.

    그는 “전통누룩으로 제조한 술이 맛과 향이 월등히 뛰어남에도 전통누룩이 발효상황에 따라 제품의 균일성을 보장하기 힘들고 이에 반해 일본식 누룩인 입국은 값이 저렴한데다 균일성을 보장해 일본식 누룩을 선호해 왔다”라며 “현재는 전통누룩으로 발효한 술도 균일성이 보장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단가가 높아 양조장에서 잘 시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룩공정에 균일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의 현대화도 시도했다.

    곡실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기존에 연탄을 주로 이용했지만 올해부터는 전기자동온도조절장치로 바꾸었다. 예전에는 통밀을 교반할 때 보자기로 싸서 사람이 일일이 발로 밟아 만들었지만 이씨는 원형 틀을 만들어 프레스를 이용한 교반 기계를 도입했다.

    하지만 국실의 나무 선반은 바꾸지 못했다.

    통밀을 올려놓는 나무 선반은 습도 조절의 중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누룩 발효의 변수가 매우 많아 환풍시설 및 자동온도조절로 바꾸었다”라며 “발효공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앞으로도 시설을 현대화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에겐 관련 시설과 장비 구비가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전통방식의 곡자를 대량생산하는 곳이 전국에서 거의 없다 보니 관련 시설을 이씨가 직접 개발하거나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곡자 생산에 필요한 연탄 화덕구이 등 관련 장비를 힘들게 찾으러 다니는 것을 봐왔다”며 “이제는 그 고독함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 장비만 바뀌었다 뿐이지 이씨는 교반기와 분쇄기 등 기계가 고장날 때마다 마땅히 고칠 데가 없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발품을 팔아 부속을 조립해 직접 만들기도 한다.

    이진형씨가 분쇄기에 넣어 가루가 된 누룩을 살펴보고 있다.

    “곡자는 내 삶의 전부이죠.”

    그는 이제 발효된 곡자의 색깔만 봐도 발효 상태를 알고 촉각만으로도 향을 판별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현재 진주곡자의 사업자등록은 발효제품이 아니라 천연조미제품으로 돼 있다. 대부분 양조장이 전통주의 제조공정에서 누룩을 조미료로 쓰기 때문이다.

    그는 “가격경쟁 때문에 전통곡자를 발효제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양조업계가 전통 막걸리를 고급화하면 사람들이 찾을지에 대해 우려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전통주 수요가 늘어 진주곡자의 생산량도 늘었지만 이씨는 이에 대한 우려도 많다.

    그는 “지난 2007년을 기점으로 막걸리의 수요가 대폭 늘었지만 일시적인 유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며 “일시적인 수요는 언젠가 또 일시적으로 빠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양조업계의 전통주 수요에만 기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가업을 이어 전통곡자를 생산하는 데 자부심을 느껴요. 세상이 변해도 명맥을 이어나가다 보면 그 가치는 충분히 발휘된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곡자를 만들 생각입니다.”

    글=김용훈기자 yhkim@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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