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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거북선모형연구소 안광일 소장

모형배의 1인자 ‘거북선 인간문화재’ 꿈꾸다

  • 기사입력 : 2011-0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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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광일 거북선모형연구소 소장이 전라좌수영 거북선 모형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안 소장은 “거북선 원형을 찾을 때까지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어 붙이고, 그 아가리로 대포를 쏘면,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적선 수백 척 속이라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쏘게 되어 있습니다.”(이순신 장군의 장계 중) 임진왜란 당시 해상에서의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안된 전투함이 바로 거북선이다. 하지만 거북선에 대한 정확한 고증 자료가 없기 때문에 거북선 원형에 대한 연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에는 거북선을 연구하고, 모형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직접 거북선을 만들어 볼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연구소가 있다. 거북선모형연구소다. 이 연구소를 이끄는 사람은 거북선모형복원전문가인 안광일(56) 소장이다. 거북선을 사랑하고, 지역의 노인과 장애인을 동행자로 삼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겨울바다가 더욱 아름다운 통영, 산양읍의 세바지 마을에 자리한 연구소를 찾았다. 복원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머리띠로 시원하게 넘긴 안 소장이 일행을 반겼다. “머리를 자르러 갈 시간이 없어서 기르고 있었는데 주변사람들이 꽤나 어울린다고 말을 해줘서 그냥 기르고 있습니다.” 통영에 내려온 후 얼마나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는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북선과 통영

    거북선 연구·모형 제작·체험·전시 및 판매장으로 구성돼 있는 거북선모형연구소는 경남도의 이순신프로젝트 연계사업 중 하나로 2008년 12월에 개소했다.

    인천에서 거북선을 비롯해 배모형을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을 운영하다 실패를 맛보고, 재기를 위해 삶의 터전이던 인천을 떠나 여수로 향하던 안 소장은 경남도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순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자문위원이 돼 달라는 요청이었다.

    여수로 거북선모형연구소를 이전해 사업을 다시 벌일 작정이었던 안 소장은 이순신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경남으로 연구소 이전키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서린 통영 바다를 앞에 둔 연구소에서 그가 하는 일은 거북선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거북선 원형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되고 있어요. 물론 저도 정확한 원형이 복원되는 그날까지 자료를 찾고, 만드는 이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가 만드는 거북선은 3층짜리 거북선이다. 일본에서 발견됐다는 3층 거북선의 그림을 보고 복원에 성공했고, 디자인 특허를 받았다.

    안 소장은 거북선 모형을 조립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조립 키트라고 해서 몇 분만에 뚝딱거려 완성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부품만 350여 개에 달하는 거북선 모형을 일반인이 완성하려면 3~4일은 족히 걸린다. 그의 기술력이 집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거북선 모형은 사람들이 거북선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바이올린-전기-모형배

    어떤 배든 그림만 보고도 마술처럼 뚝딱하고 배를 똑같이 재현해 내는 그에게 ‘거북선모형복원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처음 그의 손에 들렸던 것은 조각칼이 아니라 바이올린이었다. 악기 연주에도 재능은 있었지만 그의 흥미를 끌어당긴 것은 따로 있었다.

    중학생 때 늘 오가던 길목에 있던 양복점 쇼윈도에 전시돼 있던 배모형을 보고 온 마음을 뺏겨 버렸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것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매일같이 양복점 앞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배를 관찰한지 한 달여 만에 똑같은 배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단다. 그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고교 진학은 공예와 상관없는 전기과를 선택했다.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부모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제대 후 몇년 간 외국에서 전기업을 했던 안 소장은 몇 번의 사업 실패 끝에 배모형에 대한 동경을 접지 못하고, 전을 펼쳤다.

    당시 우연히 참가했던 해군본부의 모형배 만들기 대회에서 입상했는데, 그때가 한선과 거북선에 대한 관심이 막 커지던 시기였다. 그 전까지 그에게 거북선은 취미 삼아 만들어 주변인들에게 선물하던 것이었지만 거북선의 브랜드 가치가 눈에 들어온 순간, 일생일대의 아이템으로 변했고 지금까지 거북선에 대한 애정으로 매일을 살고 있다.

    “거북선을 비롯해 모형배를 만드는 일은 제게 항상 가장 즐거운 일이죠. 좋아하는 일을 취미처럼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취업이 힘든 사람들에게 기술도 전수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장애인·노인과 함께 가다

    거북선 모형 만들기의 1인자라는 타이틀 외에도 그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지역 노인, 장애인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북선모형연구소는 지난 2009년 6월께 경남도, 통영시, 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남지사와 장애인 고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장애인과 노인을 고용하겠다는 생각은 임금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거북선 모형의 가격을 낮추겠다는 계획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비장애인들과 다른 그들만의 집중력도 긍정적인 효과로 발휘될 거라고 안 소장은 믿었다.

    “그들에게는 적은 보수지만 경제력과 기술을 습득하게 해 자립이 가능하도록 도와주고 저 또한 제가 가진 기술을 누군가에게 전수해 줄 수 있다는 것과 사업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재 그의 연구소 제작실에는 모두 4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2명은 65세가 넘는 노인들이고, 1명은 지적장애인, 1명은 시각장애인이다.

    안 소장은 앞으로 최대 40명까지 장애인 또는 노인을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생각과 달리 구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영 시내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기도 하고, 지역에는 일을 할 만한 장애인이 잘 없는데다 홍보책 또한 마땅하지 못한 상태다.

    “연구소에는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숙소와 식당까지 구비돼 있어요. 그런데 사람을 구하기가 힘이 듭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만큼 많은 장애인들이 함께 일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연구소 운영하기 힘들죠. 하지만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닙니다. 이제 직원 고용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고, 사업도 키워야죠. 대가요? 아직 거북선 모형 분야에서 인간문화재는 없더라고요. 거북선과 통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거북선 만들기에 몰입하다 보면 거북선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연구소 운영과 장애인 고용에 변함없는 의지로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더 나아질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스윽 미소짓는 얼굴에 남겨진 세월의 자국들이 그와 함께 동그랗게 웃고 있었다.

    ☞ 안광일 소장= 1954년 인천 출생. 1·2·3회 전국해군참모총장배 모형함선 경연대회 수상, 2005년 3층 거북선모형 디자인등록, 2008년 거북선모형연구소 개소, 장애인고용촉진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거북선 문화재모형연구소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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