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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해인사 고려대장경 보존국장 성안 스님

“대장경은 우리가 문화민족임을 세계에 알리는 증거”

  • 기사입력 : 2011-01-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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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 해인사 고려대장경 보존국장인 성안스님이 팔만대장경판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팔만대장경판전을 나오고 있는 성안스님.

    눈 내린 산사는 적막했다. 찾는 이 없는 산사에 적막을 깨는 것은 바람에 날리는 풍경소리와 산까치들의 울음소리뿐. 평소 문을 활짝 열고 관광객을 받던 대적광전도 굳게 문을 닫았다. 전각과 요사채의 지붕들은 한아름 눈을 이고 있고, 처마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법보종찰 해인사. 어김없이 새벽 3시30분 몸을 깨끗이 씻고 새벽 예불을 올릴 때면 대장경의 안위를 부처님께 간절하게 비는 스님이 있다.

    국보 제32호인 고려대장경(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국보 제52호(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장경판전, 그리고 국보 제206호인 고려각판을 관리하는 해인사 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인 성안스님을 12일 만났다. 2개월 전 한 번 만난 인연인데도 친근하게 맞이했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한 장소에 있는 유네스코 문화·기록유산을 최일선에서 관리하는 보존국장이지만 거처는 단출했다.

    서너 평 크기의 온돌방에 커튼을 질러 책상과 전화기 1대를 두고 사무실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방에 마주앉아 따뜻한 차를 나누면서 대장경의 보존 관리에 대해, 그리고 스님의 종교철학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차맛이 좋다”고 하자 아홉 번 구운 생강과 역시 아홉 번 구운 감초를 달여 만든 차라고 설명한다. 이름하여 총명탕. 이 차를 마시면 총명해진다고 한다. “만약 이 차를 마시고도 총명해지지 않으면 본래 머리가 아주 굳은 사람”이란다.

     

    따뜻한 차로 언몸을 녹이고, 농담으로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는 스님의 배려가 고맙다.

    지난해 7월 1일 해인사 대장경 연구원 보존국장으로 부임한 스님은 행자 때부터 대장경과 인연을 맺었다. 옛날에는 장경판전 수다라장 왼쪽에 장주스님(대장경을 봉안한 판전을 관리하는 스님)과 기도스님이 머물 수 있는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공양(식사)하러 갈 시간에 행자승이 청소를 하고 대장경을 살폈다. 이때부터 장경판전(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에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했다.

    두 번째는 해인사 승가대학인 강원에 들어왔을 때 이태녕 서울대 명예교수(화학과)가 5개년 계획으로 대장경 보존을 위한 체계적인 연구를 하게 됐는데 이때 이 교수를 도왔다.

    이 교수가 장경판전 안의 온도·습도 변화, 대장경판에 사용된 목재연구, 방문객이 많을 때에 대장경판의 진균 현황과 연막탄을 이용한 장경판전의 공기흐름 등을 연구할 때 항상 옆에서 일을 도왔다고 한다.

    해인사 강원을 졸업 후에는 은사님을 모시고 포교활동에 매진하던 중 수행자는 선원에 가서 참선을 해야한다는 선방스님들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어 전 조계종 종정이신 혜암스님께서 주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부모님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내 모습은 어떠했나)’를 화두로 잡고 1999년 3월 문경 봉암사에 가서 참선 정진했다.

    성안스님이 장경판전(국보 제52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고려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경판을 살펴보고 있다.

    여름 하안거를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서 정진하던 중 미얀마에 있던 사형스님으로부터 미얀마에 참선을 하는 훌륭한 고승들이 많이 있는데 고승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수행을 지도 받으러 오라는 편지를 받았다.

    1년간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고승인 우빤띠따 스님이 지도하는 빤띠따라마 수도원에서 참선을 했다. 이때 1주에 두 번씩 영어로 보고하고 지도를 받았는데,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미국 뉴저지주 원적사에 2년간 영어공부를 하러 떠났다. 다시 로스앤젤레스 웨스트 대학에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았다.

    2008년 한국에 다시 나와 선방에서 참선을 더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송광사와 칠불사에서 정진을 한 후 경인년 하안거를 직지사에서 정진하려고 방부를 드린 후 만행을 하던 중 해인사에서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과 관련된 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6년 반 동안 해외로 돌아다녔고, 방문한 나라도 79개국이나 된다. 참선 스님으로서는 특이한 경력에 내심 놀랐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전 세계를 주유하던 성안스님은 이 박사와 함께 일을 할 때부터 대장경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는데 이 제안을 마다할 리 없었다.

    대장경을 보존하는데 인생을 바치겠다는 각오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해인사로 왔다. “복이 있어 좋은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

    “지금도 경판을 보거나 판전 안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으면 경판을 만드는 데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과 신비한 에너지를 느낀다.”

    경판이 가진 신비한 힘은 몇 차례의 위기를 모면하면서 더욱 확신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목숨을 걸고 대장경을 지켰고, 6·25 때는 해인사 일대가 북한군 아지트로 되자 김영환 공군 편대장이 네이팜탄을 투하해 해인사를 태워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해인사를 선회하다 아름다운 절경과 대장경,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절에서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라 명령을 어겼다.

    또 “장경판전이 지어진 1488년 이후 해인사에 7번 화재가 났지만 대적광전 위쪽으로는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고 했다.

    스님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인식 부족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관광객 중에는 대장경 앞에서 “대장경이 어디에 있느냐”, “글자가 팔만 개인지 목판이 팔만 개인지”, “여기 있는 것이 진짜인지?”, “빨래판 같은 것이 많이 있네”. “똑같은 것이 많은데 뭐하는 것이냐”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소중한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애정을 갖고 본다. 장경판전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고, 경판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이다.

    “사전에 지식이 없기 때문에 감동이 덜하고,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알고 와야 한다”고 했다.

    해인사 홍보관에 있는 홍보 영상물을 일본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다 보는 반면, 한국인들은 많이 보지 않는다고 한다. 또 외국인들은 찬탄의 말을 아끼지 않는 반면, 한국인들은 그렇게 감탄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곳에 있는 문화재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국보와 보물 60.8%가 불교 문화재인데 종교를 떠나 우리 문화재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문화재는 종교를 초월해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의 총화고, 민족적 자부심이다. 대장경을 만든 것은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민족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문화에 대한 업적을 알리는 것이다”고 했다. “월드컵을 한다고 모든 국민이 뛰지는 못해도, 온 겨레가 하나가 되듯이 대장경은 고려인들의 자부심이고, 문화민족임을 세계에 알리는 확실한 증거다. 당시에 대장경으로 인쇄된 경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전해 줬다. 문화재란 이런 것이다”고 했다.

    대장경 천년문화축전의 의미도 바로 이런 데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장경 보존에 대한 앞으로 계획도 들려줬다.

    핵심은 보존과 보수를 동시에 병행할 방침이다. 가장 하고 싶은 사업은 경판 하나하나를 입체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비와 자동으로 온습도 변화를 측정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보수와 관련, 대장경 천년문화축제가 끝나면 경판의 상태, 마모 부식도 등을 조사하고, 문제 있는 경판은 고쳐나간다는 계획이다.

    걱정도 많다. 워낙 방대해 경판 1장에 1만원이 들어도 8억원이 소요된다.

    화재 대비도 소개했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해인사에는 자체 소방차가 있고, 소방호스 등이 설치돼 있다. 여기에는 전기선 등 위험한 일체의 시설물이 못들어 간다. 판전에 불이 났다고 가정하고 소방훈련도 1년에 두 차례 하고 있다.

    그러나 새집을 지으면 금방 표시가 나지만 스님이 하는 일은 표시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보존을 잘해도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 없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개의치 않는다. 묵묵히 대장경 보존에 대한 소임만 있을 뿐이다.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동아대학교 석당연구원에서 대장경을 연구했던 최영호 박사와 청도 운문사 일어강사인 지성스님 그리고 동행한 학인스님이 합세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고 물었다.

    스님은 “푼수처럼 살아라”고 했다.

    “똑똑하거나 또는 똑똑한 척하거나, 권위를 내세우면 그 틀에 맞춰 살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참 자신을 모르고 사는데 피곤한 삶이다”고 했다. “천지도 모를 때 행복한 것이지 알면 알수록, 많이 가지면 많이 가질수록 괴로운 것”이라며 “자신이 구축한 관념과 망상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면 마음은 그만큼 가벼워진다”고 했다. 요즘 명상이 인기인 이유도 관념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찾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란다.

    산사에 어둠이 밀려오고 절을 나설 즈음 눈발이 날렸다. 총명해진다기에 총명탕을 연거푸 마셔댔는데도 총명은 어디 갔는지 영 기별이 오지 않는다. 관념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본래 머리가 나쁜가. 그래서 행복해지려나….

    글=김용대기자 jiji@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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