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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풀문화교육연구회장·짚풀공예가 서정희씨

“짚풀공예, 나에게 생활이자 삶이고 천직이죠”

  • 기사입력 : 2011-01-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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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령군 지정면 마산리 작업실에서 짚풀공예가 서정희씨가 초가지붕 위에 올릴 용마름을 만들고 있다.

    풀이 옷이 된 적이 있다.

    몸을 가리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때로는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그 풀옷에 치장을 하기도 했다.

    풀로 만든 모자를 쓰고,

    풀로 만든 우산을 쓰면서

    비를 피한 적도 있다.

    한때는 풀이 집이 된 시절도 있었다.

    얼기설기 엮어서 바람을 피하고,

    온기를 채워 잠을 자고

    그 속에서 밥을 먹고 사랑도 나눴다.

    풀집에서 풀옷을 입고

    나무 꼬챙이 하나 들고 사냥을 나섰다.

    선사시대의 풍경이다.

    들녘에 추수하고 나면 볏짚이 남는다.

    그 볏짚을 잘 묶어두었다가 1년 내내

    소의 여물로 썼다.

    콩깍지를 함께 넣으면 소의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 그런데 그 볏짚이

    집을 만드는 데도 아주 중요하게 사용됐다.

    초가집이다.

    돈 많은 집에서는 기와를 올렸겠지만

    일반 서민들은 농사를 짓고 남은 볏짚으로

    이엉을 덮고 그 위에 용마름을 올려

    초가집을 완성했다. 그도 모자라

    짚은 짚신으로, 멍석으로, 망태기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모두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짚과 풀은 인류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민족 생활상에 지대한 역할을 해

    민족 정서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요즘같이 현대화된 시대에 짚과 풀을 하루 종일 만지며 조상들이 만들어온 공예품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의령군 지정면 마산리 643-6 풀문화교육연구회 회장인 짚풀공예가 서정희(46)씨.

    서씨는 어릴 적 고향 의령에서 소 꼴을 먹이러 산에 올라가면서 처음 풀과 인연을 맺었다. 지천에 널린 풀을 잘라 여치집을 만들고, 짚으로 축구공을 만드는 등 당시 시골아이들의 놀이로 접하기 시작했다.

    서씨가 짚풀공예가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부터 어버지가 짚으로 새끼를 꼬고, 거름 소쿠리와 지게 멜빵, 초가지붕 등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드는 장면을 봐왔고 따라하기도 했다.

    그런 서씨가 본격적으로 짚풀공예를 업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6년부터.

    창원 대기업의 잘나가던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모아 풀과 짚으로 공예품을 만들었다. 시골을 찾아 주변 어르신들에게 배우기도 했고, 풀문화 운동을 선도했다.

    1998년에는 (사)짚풀문화연구회 경남지회장을 맡았고, 2000년에는 풀문화교육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해 오고 있다.

    대기업 직장과 짚풀공예가라는 직업을 맞바꾼 서씨는 지역 환경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면서 강의하고 실기도 가르치고 있다.

    자연이 준 고마운 선물 ‘짚과 풀’

    짚풀공예는 초고공예, 고공예, 초물공예로 불리기도 한다. 벼, 보리, 밀, 조, 메밀 등의 줄기인 짚과 초본식물을 총칭하는 말인 풀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이다.

    짚풀 뿐만 아니라 색상의 변화나 내구력을 보강하기 위해 초본류 외에도 칡, 등나무, 버드나무, 닥나무 등의 목본식물을 다양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서씨는 “나에게 있어 짚풀공예는 생활이자 삶이다. 지금은 별로 필요성이 없지만 예전에는 짚이 없으면 생활이 안됐다. 바구니, 삼태기, 짚신, 멍석, 우장 등 선조들의 전통의 맥을 누군가는 이어야 한다. 천직이라 생각하고 맥을 이어가겠다. 열심히 기술개발한 것을 제자들에게 물려주는 게 꿈이다”라며 짚풀공예와 자신의 숙명을 설명했다.

    짚풀공예품은 예전에는 생활에 주로 쓰였지만 지금은 생활 액세서리에 많이 응용된다. 짚과 풀은 생활용품, 장식용품으로 재현되거나 크기를 줄여 휴대폰 걸이 등으로 만들어진다. 옛날 생활에서는 주연의 역할을 맡았지만 지금은 조연쯤으로 전락한 것이다.

    제일 많이 쓰이는 재료는 볏짚, 밀짚, 보리짚, 부들잎, 닥 등이다.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구하고 있다.

    공예품으로 쓰이는 짚은 가늘고 길다. 또 손으로 벼를 탈곡한 짚이나 바인더로 수확한 짚이어야 한다. 콤바인으로 추수한 짚은 사용하지 못한다. 짚 중간에 체인이 훑고 지나가기 때문에 흠집이 있기 때문이다. 또 짚은 질겨야 한다. 농사 지으면서 짚을 구하면 되지만 그럴 사정도 되지 못한다.

    이런 재료를 갖고 서씨가 즐겨 만드는 것은, 풀잎으로는 여치 나비 사마귀 잠자리 매미 새우 뱀 용 등이며, 짚으로는 복조리 삼태기 계란꾸르미 똬리 초가집 용마름 등이다. 이 중 제일 잘 나가는 공예품은 녹차를 제작할 때 덖은 후 비빌 때 쓰는 녹차방석이다.

    서씨의 작품 중 풀잎목걸이, 휴대폰 걸이, 녹차 비비는 방석 등 4가지가 경남도 추천상품으로 등록돼 있다.

    사라져가는 짚풀 속의 민족혼

    서씨는 우리 문화는 지키고 싶은데, 정부·지자체 등의 지원이 없어 정말 힘들다고 했다. 오죽하면 많은 지인들이 “외국 가자”라고 할 정도이다.

    더욱이 중국에서 건너온 짚풀 공예품이 활개를 쳐 고군분투하고 있다. 중국의 저가공세에 밀린다는 것이다. 원재료인 볏짚도 중국 것이 많이 들어와 재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역으로 우리나라 짚은 소 사료로 수출하기도 해 요즘에는 짚이 많이 모자란다.

    짚풀공예에 대한 국민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서씨는 강조한다.

    서씨는 “우리 것을 이용해 주시면 좋은데 정말 가슴 아프다. 짚과 풀을 연구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업으로 하면 정말 힘들어 부업으로 해야 할 처지이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짚풀공예를 전문으로 전승하는 기관이 우리나라에 몇 군데 없다고 했다. 전라와 수도권에 몇 곳 있고, 경남북에는 없다는 것이다. 간간이 시골에서 아직도 짚풀로 공예품을 만들어 쓰기는 하지만.

    서씨는 여치 만들기에서부터 멍석, 초가집, 원두막, 닭집, 개집, 새집, 삼태기, 둥구미 등 200여 가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저기 배워서 재현하고 있는 것이 4분의 1, 서씨 스스로 개발한 것이 4분의 3이다. 짚풀공예는 몇 가지만 만들 줄 알면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퀴벌레를 잡아서 풀짚으로 복재해 낼 정도이고, 지나가는 도마뱀도 보고 만들기도 했다.

    큰 바구니와 멍석 등 대작도 많이 만들고 있다. 멍석 2m×3m를 만드는데 한 달가량 소요될 정도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보통 이 같은 멍석은 국내산 재료로 만든 것이면 100만원 정도 받는데, 중국·북한산은 20만원에 밀려들어와 국내 시장을 흔들고 있다. 그래서 작품을 크게 만들면 오히려 손해보기 십상이다. 특히 처음부터 크게 만들면 지겹고 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서씨는 “크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작게 만들어서 방법을 잊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작게라도 만들어 기술을 소유한 뒤 차후 ‘공예가들에게 좋은 세상’이 오면 민족혼이 어린 작품을 크게 확대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품처럼 따스한 짚풀 공예 살리자”

    서씨는 짚풀공예를 물려주기 위해 제자를 많이 양성했다. 현재 서씨의 영역에는 회원과 제자가 경남, 경기도, 강원도를 포함해 100여 명이나 있다.

    특히 서씨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많이 한다. 6년째 마산중학교 강의를 하고, 대학교 평생교육원, 문화원, 복지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의령지역 문화축제인 의병제전, 한지축제, 수박축제와 고성 공룡축제 등 크고 작은 지역축제에서는 짚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조상들의 생활문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공예품을 지켜내기 위한 서씨만의 몸부림인 것이다.

    그러한 서씨의 몸부림과는 반대로 서씨는 짚풀공예 작품을 팔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급할 때는 빨리 와서 강의해 달라고 하며, 작품도 기증할 것을 요구만 한다. 작가의 급한 사정은 생각지도 않으면서.

    작품을 팔아야 생계가 되고, 생계가 어느 정도 안정돼야 공예품을 전승할 수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 그럼 생계는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는 “강의를 하면서 생기는 수입을 아껴 쓰면서 재료를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그래서 자신 같은 힘겨운 처지에서 공예를 전승하는 작가들을 위해 행정기관, 학교, 문화원 등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씨는 “배우려는 사람은 많은데 수강료를 내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서 “하다못해 강의 개발과 강사료 지원은 돼야 하며,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면 짚풀공예에 대한 관심이라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는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2009년 대한민국 명인에 추대돼 활동하고 있지만 무형문화재가 되는 꿈도 꾸고 있다. 대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지방에는 초고장(짚풀공예장)이 있어 후진양성에 큰 도움을 받고 있지만 경남에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힘겨운 여건 속에서도 조상들의 숨결과 내내 호흡하고 있는 서씨. 기자에게 공예가들이 내내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후진 양성을 위해 초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서씨.

    우직한 덩치로 믿음직한 작업을 하고 있는 ‘총각’ 서씨가 하루빨리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신부’를 만나 신명나는 작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짚풀공예가 서정희 ☏ 010-7315-9008.

    글·사진=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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