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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방언 연구 한평생 김영태 경남대 명예교수

“머라카노? 방언은 촌스런 사투리 아닌 문화유산이야”

  • 기사입력 : 2011-04-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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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태 경남대 명예교수가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서재에서 책을 들어보이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방언은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 잊혀지지 않게 잘 보존해야죠.”

    경남지역 방언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경남대 김영태(73) 명예교수는 이 분야 첫 전공자로서 지역 방언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그는 40여 년간 경남 곳곳을 돌면서 간첩으로 수차례 오인받기도 하면서 방언자료를 수집하고 연구, 40여 편의 논문을 펴냈다.

    김 교수는 지금은 ‘칩거’를 하며 잠깐 외도 중이다. 2005년 6월 마지막 강의를 마친 후 외부행사 등에는 일절 나서지 않고, 독서와 걷기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김 교수의 1층 서재에도 방언 관련 서적보다는 관동별곡 800리길, 제주도 올레길 등과 관련된 책과 주역, 명리학 책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청암 김영태

    김 교수는 마산 산복도로가 끝나는 삼거리의 한 귀퉁이 골목길, 울창한 나무가 인상적인 양지바른 곳에 부인 조두이(71)씨와 함께 거처하고 있다. 노부부의 유별난 애정은 제자들의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캠퍼스 커플인 데다가 언제나 함께 손잡고 걷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정일근 시인은 김영태 교수의 집을 단골 통술집으로 비유했다. “안주인은 ‘물망초’, 바깥주인은 ‘오솔길’인데 늘 영업을 하는 곳은 아니며, 부부가 손잡고 걷기를 즐겨 집이 비어 있기 일쑤다. 손님에게 천운이 따라야 대문이 열린다. 안주는 물망초님 마음대로, 술은 오솔길님의 애주인 청암홍주(靑巖弘酒)를 같이 마셔야 하는데, 그곳은 언어학자 청암 김영태 선생님 댁이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댁에서 반주를 즐겨 하셔서 사모님의 안주 솜씨가 통술의 경지를 넘어버린 지 오래다. 또 그곳엔 어떤 통술집에도 없는 별미가 있는데, 고희를 넘긴 부부가 손을 꼭 잡고 ‘물망초’ ‘오솔길’이란 연애시절 애칭을 부르며 늘 외상 손님인 제자들 앞에서 뜨거운 애정을 수시로 과시하는 일이다”며 스승 부부의 유별난 사랑을 자랑했다.

    노부부는 내일도 어느 길을 걸어갈지 서로 손을 잡고 궁리를 하고 있다.


    방언 찾아 오지로

    김 교수가 방언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경남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1964년 중앙대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부터다. 당시 이숭녕·남광우 교수의 강의나 환담에서 방언 조사에 대한 정보를 듣고, 경남 방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으며, 그해 여름방학부터 당장 방언 수집의 답삿길에 올랐다. 이후 40년간 각 지역의 막걸리 집에서 술잔도 기울이고 시장을 찾아 쉽게 접하기 어려운 말들을 찾아내는 등 발로 뛰며 자료를 모았다.

    “당시에는 교통이 불편하고 사회환경이 빈곤해 방언을 조사하는데 애로가 많았습니다.”

    김 교수는 방언을 조사할 때 군청에서 오지의 면을 소개받고, 면 사무소에서 오지의 마을을 찾는 방법을 택했는데, 몇 십리는 걸어야 한다는 각오를 언제나 다져둬야 했다. 1960년대는 마산에서 진주까지 가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산청군 지역으로 완행버스를 이용해 어렵게 1차 방언 답사를 갔을 때 일이었다. 금서면 방곡리를 추천받아 화계리를 거쳐 경호강과 지리산 계곡을 따라 상당한 거리를 걸어 자정이 넘은 시각에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지금도 한이 풀리지 않고 있는 방곡리 양민 학살 터라는 설명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도 했다.

    또 함양군 유림면으로 이동할 때는 조사카드 가방을 머리에 이고 경호강을 건너기도 했다.


    간첩으로 오인받기도

    1960년대 방언 조사를 나가면 간첩으로 오인받아 파출소로 연행되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형지세를 묻고 산 이름, 높이, 통행방법 등을 물으니 간첩행위를 위한 사전답사라고 오해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요.”

    1964년 여름, 거창에서 머물다 울산 쪽으로 가려고 하다 무작정 김천행 버스에 올랐는데, 차림새나 행색이 말이 아니었기에 불심검문에 걸렸고,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에야 파출소를 나올 수 있었다. 그날 밤은 초등학교 숙직실에서 경북 김천 지역어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울산 방어진에 갔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식당에 들러 평소 방언 형성의 요건들에 대한 것으로 습관화돼 있는 방어진의 여러 가지를 물었고, 교통편, 지형지세를 물었던 것이 화근이었죠.”

    식당에서 나와 여관을 찾던 중 사복경찰에 양쪽 팔을 붙잡혔고, 경찰서까지 가게 돼 이틀 연속 검문에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런 곳에서 희귀한 어휘를 대하다 보면 고생했던 기억이 싹 사라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경남 방언의 특징

    그는 경남 방언의 특색을 드러내는 재미나는 것으로 ‘가’자(字) 말놀이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가 = 그 아이, 가 가? = 그 아이냐, 가가가? = 성이 ‘가’씨냐?, 가 가가 가? = 그 아이가 그 아이냐?, 가 가 가가가? = 그 아이가 ‘가가’냐?, 가 가 가가 가 가? = 그 아이가 ‘가가’ 그 아이냐?, 가가 가 가 가가 가? = ‘가가’ 그 아이가 그 아이냐? 라는 것으로 주격 조사 ‘가’와 ‘가(賈)씨 성을 가진 사람과, 경남 방언 의문의 조사(첨사) ‘가’까지 가세하면 말놀이의 절정을 이룬다는 것이다. 또 비모음화 현상이 현저해 ‘강이, 논이’는 ‘가이, 노이’로 발음되고, 장에는 ‘자아’(시장에)로 발음하고 있다. ‘선생님→샘’, ‘나입니다→냄 더’, ‘무엇이라고 하느냐→머라카노’ 등 축약현상도 유별나다.

    김 교수는 “경남지역으로 시집오는 여자들이 시어머니 말씀에 처음으로 곤란을 느끼는 어휘로 개발(조개), 쪽(국자)이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유명한데 , ‘에나’(진짜), ‘엘로’(차라리)와 같은 어휘는 진주지역 사람임을, ‘씨사이, 씨다이’(소견머리 없고 주책없는 사람, 신건이)와 같은 것은 고성사람임을 금방 알게 해줄 만큼 한정된 지역에서만 독특하게 쓰이는 특수한 어휘도 있다”고 방언을 수집하는 즐거움을 알려줬다.


    방언은 귀중한 문화유산

    “방언은 단순히 촌스러운 지역 사투리가 아니라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걸 잊으면 우리말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김 교수는 방언 연구에 있어 제일 급한 것은 자료수집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생존해 계실 때 부지런하게 더 많은 어휘를 채집해 정리를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되면 이는 자손만대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곡되고 있는 고운 우리말과 사라지고 있는 토속 사투리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는 김 교수는 “언어는 선조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경상도 방언들이 자취를 감추고 나면 지역에서 수백년간 살았던 조상들의 혼까지 잃어버리는 것이다”고 말하며 방언에 대한 요즘 세태의 무관심을 아쉬워했다.

    글=이종훈기자 leejh@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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