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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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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용 진해리틀야구단 감독

“9회말 투아웃, 야구도 인생도 꿈을 향한 기회”

  • 기사입력 : 2011-05-0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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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용 진해리틀야구단 감독이 창원시 진해구 풍호체육공원에서 야구공을 들어보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감 감독은 ‘꿈꾸는 사람은 꿈을 닮아간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처럼 오늘도 희망을 던진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가 최강 OB 베어스와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다. 상대투수는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출신으로, 19연승을 달리던 박철순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에이스 투수들은 감기가 들었다거나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박철순과의 맞대결을 꺼린다. 박철순의 20연승 제물이 되기 싫기 때문이다.

    그 때, 패전처리투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감사용이 “감독님, 제가 던지고 싶습니다”라며 나선다. 그의 첫 선발 출전은 이렇게 이뤄졌다.

    훤칠한 키에 멋진 용모의 박철순은 팬들의 환호 속에서 쾌투를 이어가고, 감사용은 수비의 난조 속에 초반 두 점을 잃는 등 이닝마다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야구장의 분위기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역전 홈런으로 3-2로 앞서면서 일순간 바뀐다. 야구장에는 감사용을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삼미의 더그아웃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실제 인물인 감사용(54·진해시 덕산동) 진해리틀야구단 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영화는 실화와 허구가 뒤섞여 있다. 감사용(이범수 분)은 박철순과 몇 번이나 맞붙었지만, 영화처럼 20연승의 재물이 된 것은 아니다.

    감 감독은 그러나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보면, 60% 정도는 사실과 가깝다”고 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지난 2004년 9월 개봉돼 8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름 그대로의 슈퍼스타가 아니라, 패전처리투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감사용 감독이 어떻게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1997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은퇴한 뒤 10년이 더 됐죠. 당시 저는 창원에 살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팬이라며 전화를 했더군요. 이 청년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전화로 안부를 물었고, 반 년 정도 지나서는 저를 만나러 창원에 왔더군요. 한두 해 정도 그런 식으로 전화하고 또 찾아오더니, 저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청년은 훗날 ‘슈퍼스타 감사용’을 만든 김종현 감독이었다.

    “그땐 농담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했죠. 훌륭한 선수들이 많은데, 왜 저를 주인공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믿기지 않았죠.”

    그 뒤에도 전화와 방문은 이어졌고, 감 감독은 김종현 감독의 진심을 알아보고 마침내 영화 제작을 승낙했다. 이후 다시 수년이 지나 영화사로부터 정식 제의가 들어왔고, 곧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나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던 감사용 감독은 6학년 때 진해 대야초등학교로 전학한다. 당시 야구부가 있던 진해중학교에 진학하려는 생각에서다. 중학생이 된 감사용은 학교 체육시간에 멀리 던지기로 선생님의 눈에 들었고, 곧 야구부에 들어갔다.

    그는 1972년 3월 마산고에 진학하면서 ‘슈퍼스타’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 나갔다. 당시 야구는 그에게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고 자전 에세이 ‘꿈과 도전, 그리고 인생 이야기’에서 술회했다.

    그는 팀의 에이스로서 대회마다 완투를 거듭하며 고군분투했지만, 전국대회 4강이라는 목표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는 곧 명문대학의 스카우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삼미슈퍼스타즈 시절 감사용 선수.


    인천체육전문대학 2학년 때 같은 학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체육고교 야구팀 감독을 맡기도 한 그는 졸업 후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부모님의 걱정거리를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창원 삼미특수강에 입사했다. 직장야구팀이 있는 회사여서, 막연하나마 기대감도 있었다고 한다.

    “면접장에서 인사부장께서 야구했느냐고 묻고는, 합격시켜 줄 터이니 회사에서 야구 좀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가점을 받아 합격한 것 같아요.”

    입사 첫해, 창원공단 직장인 야구대회가 열렸다. 투수로 나선 감사용은 인사부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두 경기 완투승을 곁들이며 창단 후 첫 우승을 회사 동료들에게 안겨줬다. 비록 직장인 야구였지만, 그는 ‘슈퍼스타’가 됐다.

    입사 이듬해인 1982년은 그에게 특별한 해였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특히 삼미그룹이 프로야구 제6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를 창단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직장생활 틈틈이 몸을 만들어 왔던 그는 마침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해 겨울에 삼미 슈퍼스타즈는 진해로 동계훈련을 왔고, 그는 선수단 버스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동계훈련 45일 동안 제가 배팅볼을 던졌습니다. 같은 계열사의 직장야구팀 투수라고 하니 쉽게 받아 주더라구요. 그러던 중 감독님이 저를 눈여겨본 것 같아요. 동계훈련을 끝낸 뒤 선수단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같이 가게 됐죠. 아마 팀에서 왼손잡이를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꿈을 이룬 거죠.”

    공개 테스트를 거쳐 입단하는 것으로 묘사한 영화와는 다른 부분이지만, 감사용은 6개 구단을 통틀어 유일한 직장 야구인 출신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비록 최약체 팀이긴 하지만, 이 팀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죠. 야구를 처음 배운다는 생각으로 한 구 한 구를 혼신의 힘으로 던졌어요. 대학이나 실업팀에서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죽어라 연습하는 길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감사용에게 프로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그는 입단 첫해에만 133과 2/3이닝을 던졌지만, 1986년 은퇴하기까지 프로야구 다섯 시즌 동안 거둔 성적은 1승15패1세이브가 전부였다.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는 창단 원년에 15승 75패를 기록했다.

    “선수층이 얕고, 또 장기레이스를 펼치다 보니 자주 등판을 해야 했죠. 사실 야구에 패전처리투수라는 것은 없어요. 구원투수만 있을 뿐이지. 우리 팀이 늘상 패배를 하다 보니 스포츠기자들이 패전처리투수라는 별명을 붙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사용 역을 맡은 영화배우 이범수(오른쪽)와 함께.


    그가 기록한 1승은 1982년 5월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였다. 그러나 그는 1승보다는 1무승부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야구에서 무승부라? 감사용은 같은 해 OB와 맞붙었을 때 7회 2아웃 2·3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했다. 그는 연장 15회까지 가는 혈투 속에서도 한 점도 내주지 않았고, 그 사이 팀은 2점을 따라붙어 4대4가 됐다. 이 경기에서 그에게 남겨진 공식기록은 없다. 그러나 그는 이날 등판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OB 베어스를 끝으로 은퇴한 그는 창원시 가음정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작은 음식점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에 얻었던 외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길 기대도 했지만, 고교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고 한다.

    야구 인구의 저변을 넓혀 보자며 옛 직장이 있는 창원으로 왔던 그는 사파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김해 내동중학교 등의 야구부 창단을 이끌었다.

    1985년에는 진해에 연고를 둔 국제디지털대학교 야구부를 창단해 감독을 맡았고, 또 창원야구협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 자신의 새로운 꿈을 하나씩 실현시켜 나갔다.

    지난 2008년 진해리틀야구단 창단도 그런 꿈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리틀야구연맹 정식등록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야구와 관련해 가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주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야구란 무엇일까.

    “야구는 인생과 같습니다. 9회말 투아웃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이룰 수 있고, 다 잡아 놓고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기회가 오게 돼 있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처럼, 감사용 선생님은 그 꿈을 위해 달려왔고 아직까지도 달려가는 사람이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김종현 감독은 ‘꿈과 도전, 그리고 인생이야기’ 추천평에 그렇게 적었다.

    글= 서영훈기자 float21@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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