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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날은 간다- 이처기(시인)

  • 기사입력 : 2011-06-0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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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요무대’는 KBS 장수 프로그램으로 30년 가까이 우리 한민족의 애환을 달래고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보다 타국 동포들이 더 많이 즐겨 보며 향수를 달래는 프로다. 배철수가 진행하는 ‘7080 콘서트’는 50대를 전후한 우리 사회 주역들이 참가하는 프로다. 세시봉 열풍은 바쁘게 살아온 우리 중년들을 그리움과 추억에 젖어들게 하고 있다.

    대중가요는 애호하는 계층을 넘어 우리에게 이제 생활이다. 생활에 너무 친근해진 한 부분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치고 대중가요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 록이나 팝, 재즈에 비하면 대중가요 트로트는 신선감은 덜 주지만 한민족의 깊은 가슴에 스민 한(恨)을 끈끈히 지니고 있는 노래다.

    대중가요의 가사에서 뛰어난 문학성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우리 생활과 민족의 가슴에 깊은 한과 서정을 담고 동시대의 삶과 모습을 그려오고 있기에 그 생명력은 끈끈하고 길다.

    해방 전의 노래는 우수를 담고 민족의 설움을 달래주었다. 채규협의 ‘희망가’, 이애리수의 ‘황성옛터’, 고복수의 ‘타향살이’,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그런 노래다. 해방의 기쁨을 가슴에 전해준 이인권의 ‘귀국선’은 경쾌하고 희망을 부풀게 하는 노래다.

    50년대는 분단의 탄식과 전쟁의 상흔을 절절히 노래로 달래 주었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판자촌과 피란살이의 아픔을, ‘굳세어라 금순아’는 남북이산가족의 혈육의 정을, 한정무의 ‘꿈에 본 내고향’,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은 망향의 설움을 달래주었다. 그때는 MP3와 CD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라디오로 노래를 들었다. 거기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들었다.

    비가 내리는 날엔 패티 김의 ‘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초우’를 들으며 공장 기숙사와 전방부대 막사에서 노래로 마음을 달랬다. 그들은 70년대를 살며 80년대의 꿈을 키워 왔다.

    ‘창밖의 여자’ 조용필의 장엄한 열창을 들으며 낭만에 젖고 꿈을 꾸었다. 매혹의 소리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배호의 요절을 잊지 못하며 그리워했다. 청춘을 보내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대중가요는 이렇게 시대와 사람의 모습을 반영하여 흥얼거리는 생활예술이다.

    지금은 정보의 시대, 전자기기가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노래의 색깔이 달라지고 멜로디도 빠르고 다양하게 변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속 깊이 스며 있는 이 가요는 영원히 전승되어 갈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로 시작하는 ‘봄날은 간다’는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 청춘을 회상케 하는 노래가 되었다. 청아한 목소리 속에 일렁이는 한을 담은 노래, 이 노래를 불렀던 가수 백설희가 지난해 타계했다. 50~60년대 최고 스타였고 항상 곱게 보이던 대중문화 명가의 안주인이던 백설희는 신록도 싱싱한 5월, 봄날처럼 살다가 떠났다. 벌써 1주기가 지나갔다.

    ‘봄날은 간다’는 한국전쟁 후 남편과 가족을 위한 희생에 심신을 달래야 했던 당시 여성들의 애상을 담담히 풀어 냈다. 이 노래의 생명력은 후배 가수들이 앞다퉈 증명했다. 이미자 조용필 나훈아 등이 리메이크했으며, 영화도 만들어졌다. 계간지 ‘시인세계’가 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을 조사한 결과 압도적 지지를 받아 1위로 오른 것이 이 노래다.

    평론가 최규성은 이 노래는 격변의 역사를 견디며 살아 가던 한국의 고전적 여인상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했다. 하얀 백설처럼 그러면서도 하얀 목련 꽃잎처럼 들리는 독특한 힘이 배인 백설희의 목소리는 심금을 울린다.

    백설희는 가고 ‘봄날은 간다’는 남아 있다. 산제비 넘나드는 시골길, 꽃이 필 때 맹서하던 봄날, 실없는 기약이라 할지라도 꽃편지를 주고 받던 연정은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수채화처럼 맑은 저 하늘에 봄날이 간다.

    이처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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