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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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혀에서 잊혀져 간 사투리- 김학규(전 마산삼진중 교장)

  • 기사입력 : 2011-07-1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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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첩다’란 말이 있다.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칼이나 물건을 갖다 드릴 때 날을 내 쪽으로 하고 손잡이를 상대방쪽으로 돌려서 드리면 그 자리에 모인 어른들은 다 같이 입을 모아 엄첩다고 말한다.

    굳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말’로 따지면 ‘기대 이상이다’쯤으로 해석될 말이었다. ‘어린 줄 알았는데 다 자랐구나’라는 안도와 만족과 대견함이 흐뭇한 웃음에 버무려진 ‘엄첩다’는 어른이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최상의 칭찬이었다.

    그 ‘엄첩다’는 말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에게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위엄 있는 칭찬 말 대신 껴안고 입 맞추고 애정 공세만이 그득하다. 아이에게 엄첩다고 칭찬해 줄 어른이 사라져 버린 것도 쓸쓸하지만 그 말을 달게 음미하며 세상 질서를 배운 주제에 정작 그 그리운 단어를 내 혀에서 놓쳐 버린 게 더 기막히다.

    표준말만이 고급언어인 줄 알았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 따위는 박대하고 무시했다. 학교 말과 집 말이 달랐다. 집에서는 옴마라고 부르고 학교에선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어머니라고 글을 썼다. 학교 교육이 길어지고 표준말에 익숙해지면서 당연히 내 혀는 사투리들을 잊었다. 단 한 음절에 수백 마디 의미를 함축하던 다채로운 감탄사와 정이 뚝뚝 듣는 향기로운 종결어미들과 섬세하고 정교해 후드득 날개 쳐 올라갈 듯한 생생한 형용사들을 내 머리는 다 밀어내 버렸다. 표준말이 아니란 죄로 팽개쳤던 보물들, 금쪽같은 그 말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나. 옴마와 아지매와 할매가 쓰던 말의 정감을, 그 내음새와 빛깔과 감촉을 잃어서는 나는 내가 아니다. 아까운 사투리를 더는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김학규(전 마산삼진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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